복종 - 미셸 우엘벡
복종, 미셸 우엘벡, 문학동네, 2015(1판2쇄)
하지만 작가는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존재다. 요컨대 글을 아주 잘 쓰건 아주 못 쓰건 이것은 나중 문제이고, 중요한 것은 그가 글을 쓰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작품 속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따지지 않는다면 인간존재는 양적으로는 원칙적으로 똑같다. 인간은 원칙적으로 거의 동등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몇 세기의 간격을 두고 보면, 작가들은 대개 한 올 한 올 풀려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거기엔 어떤 모순도 없어. 당신은 그저 소비자들의 유형 분류일 뿐인 여성 잡지의 심리 분석을 적용한 거니까. 책임감 있는 환경주의자 보보스족, 과시욕 강한 부르주아, 게이에게 우호적인 클럽족, 악마적 컴퓨터광, 테크노 젠 등등 매주 새로운 유형들이 쏟아져나오지. 난 다만 그들이 분류해놓은 소비자 유형 중 언뜻 보기에 들어맞는 것이 없을 뿐이야."
"요컨대 사람들을 살아가게 해주는 그런 타협이 당신하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할까."
"하기는 무엇 때문에 한 인생이 정당화되어야만 한단 말인가? 동물들 전부가, 그리고 압도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당화의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들은 단지 사니까 사는 것이다. 그뿐이다. 이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들은 아마 죽으니까 죽을 것이다."
육체적 쾌락을 박탈당한 수도사가 섬세한 음식과 오래된 와인 앞에서 힝힝거리듯, 날로 심화되어 가는 감각의 퇴화가 그들을 식도락으로 이끌었다.
나의 육체는 대개 두통과 피부병과 치통과 치질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나를 절대 평화롭게 내버려두지 않는 다양한 고통의 근원지였다. 이제 겨우 마흔네 살인데! 쉰 살, 예순 살, 그 이상이 되었을 땐 대체 어떨 것인지! ...... 그때의 나는 서서히 와해되는 신체 기관들의 병렬이나 다름없을 것이며,
기독교는 과연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저는 예전엔 그렇게 믿었습니다. 몇 년 동안은 커져가는 의심 속에서도 그렇게 믿었지요. 그러다 점점 토인비의 사상에, 문명은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화되었고, 어느 날, 단 하루만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렸죠.
좋았든 나빴든 상관없이 과거는 늘 아름다우며, 미래 또한 그러하다. 오직 현재만이 힘들다. 우리는 무한하고 평화로운 두 행복 사이에 수반되는 고통의 종양으로서 현재를 받아들인다.
"선택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조금은 환상이 아닐까요? 선택의 상황에 놓인 모든 남자들이 정확히 똑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