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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리얼리스트 - 니콜라 브륄레

zral 2016. 10. 19. 19:21






타투리얼리스트, 니콜라 브륄레, 동아일보사, 2015(1 1)


 


 


 


 


 내가 흥미롭게 여긴 부분은 이 세 도시가 타투를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하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어떤 특수성을 발견하게 될지를 알아가는 일이었다.


 


 


 


 각자 살아온 길이 어떠하든 나는 감히 타투가 현대인들이 열망하는 세 가지를 만족시킨다고 주장하고 싶다.


 바로 즐거움과 유혹, 젊음이다.


 


 


 


 이 책은 지속성과 평정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도시의 몇몇 풍경이 주는 슬픔에는 개의치 않는 것처럼.


 


 


 


 이 시대에 타투는 대부분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러내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타투는 자신을 '구축'하는 데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타투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용감하게 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소라야에게 타투는 여백에 삶을 적어나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러 종류의 타투로 몸을 장식하면서 말 그대로 '피부를 입고' 다니게 된 것이다.


 


 


 


 왼쪽 무릎 위에는 ' Strom in a tea cup(찻잔 속의 폭풍)'이라는 글귀를 그려 넣었다.


 


 


 


 그녀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난 뒤 타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타투를 선택한 것은 고난을 감수하는 방식이다.


 


 


 


 "몸을 내 삶의 철학에 바치는 것. 감각과 예술을 위해." 알리제는 자신의 타투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때때로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타투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나중에 나이 들면 타투를 어떻게 할 거예요?"라는 진부한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 세대에서 가장 멋진 엄마가 될 거예요!"


 


 


 


 엘로디는 견갑골 사이에 한 문장을 새겨 넣었는데 그녀에게 이 문장은 '보이지 않는 상처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물을 때 종종 되살아난다. 결국 그들이 몸에 기록하는 것은 각자가 겪은 시간의 흐름이다. 나는 이것을 '자발적 주름'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몽상가 로랑지는 자신의 타투를 '나의 작품'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그려진 몸과 그 제스처의 리듬에 맞춰 사는 것이 좋다.


 


 


 


 사라는 최근에 12개 정도의 타투를 했다. 대부분의 타투에는 어떤 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방식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치에 대한 깊고 구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일부가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고 상상한다. 반면 자기 몸에 타투를 하는 이유는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고 어디든 함께 다닐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투이스트인 마르크와 마에바는 프랑스 북부 도시 발랑시엔에 '윈체스터스 타투 숍(Winchester's Tattoo Shop)'을 오픈하면서 '사람들을 색칠하고 싶어 하던' 꿈을 이루었다.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사람이 되려면 칠을 해야 했다. 자연 상태로 남은 사람은 짐승과 구분되지 않았다."


 


 


 


 티에리에게 타투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된 몸을 갖는 방법이다.


 


 


 


 그리고 거의 매일 완벽하게 불완전해지자고 생각한다.


 


 


 


 눈으로 드러나게 숨기기.


 


 


 


 타투는 매우 역설적이면서 모호한 것이다. 사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누구나 볼 수 있고, 때로 열광적인 환호를 받기도 했다 경멸을 받기도 하며, 섹스 어필해 자기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실 타투에는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플로가 말한 것처럼 타투는 '암호화된 세상'에 속할 뿐 아니라 타투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고 진실과 거리가 멀며 늘 '중심에서 벗어난다.' 타투는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런 타투의 매력은 보면서도 진짜 무엇을 보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신기루이거나 꿈에서 본 장면처럼 말이다.


 


 


 


 뱅상 에스텔론은 그의 책 <정신과 신체 Champ Psychosomatique>에서 타투에 관해 '제 것으로 만들기'라는 표현을 썼다. 타투를 통해 자기 안에 존재하는 지나치게 흥분된 감정을 피부로 배출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감정을 없애거나 자신을 스스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옮겨놓거나, 아니면 차라리 그것을 자신의 거죽에 앉히는 것이다.


 


 이런 행위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자신과 타협하고 자신을 되찾는다. 이런 점에서 타투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효능이 있다.


 


 


 


 동시에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몸에 대한 시선이 타투로 매개되기 때문이다. 타투를 한 사람은 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타투가 숨겨진 경우), 분명한 것은 이런 매개가 타투를 보는 사람뿐 아니라 타투를 한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점이다. 타투로 인해 생기는 이런 구별은 몸의 흔적이 점점 더 많아질수록 커져 어느 순간부터는 일반적 공유가 어렵게 된다. 이 거리감이 감각을 느끼는 순수한 능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존 어빙은 말했다.


 "의학적 이유 없이 온몸에 타투를 한 많은 사람들은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