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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장강명

zral 2020. 7. 5. 16:57

뤼미에르 피플, 장강명, 한겨레출판, 2013(전자책 발행)

 

 

 

 

 모기

 

 기적이 필요한 순간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전보다 더 심하게 싸웠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때렸고, 여자아이도 거세게 맞섰다. 어느 시점부터는 여자아이가 먼저 도발해 싸움을 유도했다. 싸우는 순간에는 남자아이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명견 패스

 

 나는 왜소증 환자다. 장애의 정식 명칭은 저신장 장애라고 한다. 저신장 장애는 모두 장애 등급 6급으로 분류된다. 내 키는 138.2센티미터고, 이마가 넓지 않은 편이라 눈은 대략 지상 1.3미터 높이에 있다. 태어날 때는 안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에 장애가 있었던 사람들은 일반인과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다고 한다. 어릴 때 말을 듣고 언어에 대한 개념을 키울 기회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수화는 일반 언어만큼 복잡하거나 정교하지 않다. 언어는 사고의 

그릇이고, 그들의 사고는 우리와 다른 그릇에 담겨 있다. 

 

 반상에 놓여 있는 바둑돌의 위치는 9급이 볼 때와 9단이 볼 때가 다르다.

 

 시청 주변을 하늘에서 관찰하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도 인간들의 움직임을 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수천 수만 명의 인간이 오전 9시에서 9시 사이에 갑자기 지하철 시청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이유를 외계인이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런 움직임이 7일을 주기로 5일간 계속되고 2일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외계인들이 그 현상을 이해하려면 현대 자본주의와 직주 분리의 원칙 그리고 구약성서를 알아야 한다.

 

 좌석 버스의 의자에 앉아 차창 밖을 보다가 롯데백화점 주변 나무에 달아놓은 전구가 획획 지나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깝고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마법매미

 

 귀도 눈처럼 감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어녀 죽이기

 

 그때 찻탓캇은 깨달았다. 법과 도덕과는 거리가 먼 야생 수컷 무리에서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은 정직함이나 포용력이 아니라 뻔뻔함과 문제 해결력이라는 사실을.

 

 

 

 피 흘리는 고양이 눈

 

 일요일, 전날 잠을 못 이루고 맨 얼굴을 드러낸 모텔 건물들이 고단해 보인다.

 

 

 

 동시성의 과학

 

 주말에 기현이라는 아이가 자살했다. 그 아이는 매일 <스포츠타임스>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재미없기로 악명 높은 연재 만화 <말랑툰>의 독자 댓글란에 욕을 쓰는 게 취미였다. “작가야, 돈이 그렇게 궁하니? 웬만하면 만화 

그만두고 다른 직장 찾아봐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