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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경제학 - 로버트 쉴러

zral 2022. 2. 21. 12:28

내러티브 경제학, 로버트 쉴러, 알에이치코리아 2021(1판 2쇄 발행)

 

 

 비트코인이 자리한 첨단기술의 금융 분야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팽배한 이유는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금융업자들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열성적인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을 이용한 이 대담한 시도가 자신을 미래의 신세계에서 승자가 될 이들과 연결해줄 것이며, 세계의 주도권을 유지할(또는 쥘) 통찰력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스 그랜드마스터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마저도 체스 게임을 일종의 이야기로, 기승전결이 있고 중간에 약간의 고난과 반전이 있는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로 보는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야기의 끝에는 도덕적 교훈이 있다.

 

 

 실험적 증거에 따르면, 새로운 발명품의 성공 여부는 사람들이 남들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은 각 영양분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강의식 접근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중은 내러티브로 된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때, 그리고 이야기 속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더욱 강렬한 반응을 보였다.

 

 

 대중 매체는 흔히 경제를 건강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에 비유한다. 경제를 때때로 건강하거나 아니면 병이 들었다고 묘사하는 것이다. 마치 그런 상황을 타계하려면 의사가 올바른 약(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을 투여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이런 건강/질병 비유와 더불어 언론 매체는 종종 신뢰 지수나 주식 시장을 기반으로 측정한 ‘신뢰’라는 체온에 대해 보도한다.

 

 

 내러티브의 역사에 따르면 가짜 뉴스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좋아했고 도시전설처럼 진위가 의심스러운 이야기를 퍼트렸다. 

 

 

 가짜 뉴스는 흔히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우리 뇌의 현실감시 처리 기능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에 따르면, 다른 기억과의 연관성을 통해 기억의 원천을 확인하는 출처감시는 뇌에게 아주 힘든 일이다. 따라서 뇌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이야기가 믿을 만한지, 그렇지 못한지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린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내러티브는 이제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드디어 지역정부의 부패와 무능이라는 끝없는 문제에서 해방될 새로운 코즈모폴리턴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암시한다.

 

 

 2009년, 유명 가수인 릴리 앨렌Lily Allen이 비트코인으로 대금을 지불하겠으니 공연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내러티브도 그중 하나다. 이 내러티브에는 유명한 문장이 등장한다. “지금 앨렌은 그 일을 지극히 후회하고 있다. 만약 그 제안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2017년에 억만장자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기가 막힌 투자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후회하도록 자극함으로써 비트코인 내러티브와 비트코인 가격의 상승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22년에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심리학자 에밀 쿠에Emile Coue는 자기암시 캠페인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인물이다. 수백만 명을 매료시킨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공하려면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암시를 걸어야 한다.

 

 

 프로퀘스트에 따르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의 절반 이상이 신문 기사가 아니라 광고에서 사용되었다.

… 어느새 아메리칸드림은 내 집을 마련하는 꿈으로 바뀌었고, ‘내 집 마련’이라는 발상에는 애국심과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이 함축되어 있었다.

… 프로퀘스트의 검색 겨로가에 따르면 1931년 이후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단어사 사용된 자료 중 3분의 2 이상이 ‘집’ 또는 ‘주택’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만 비트코인을 이해할 수 있고 한물간 기존 세대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자동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 고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정적인 사건은 1811년 영국에서 가공의 인물로 추정되는 러드Rudd가 주도한 집단 저항운동이었다. 오래된 실업 내러티브를 새로 가공해 사회운동으로 탄생시킨 변이 요인은 바로 방직공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역직기였다. 이듬해부터 ‘러다이트’라는 단어가 신문에 주기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기술적 진보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일컫는다.

 

 

 기술적 실업이라는 기본 내러티브는 동일하지만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었다. 처음에 거대한 기관차와 전제 제품은 인간의 근력을 절약했다. 그리고 이제 내러티브는 변이를 거쳐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변이는 기존의 내러티브를 참신하게 만든다.

 

 

 디지털 컴퓨터에 대한 불공평한 접근 기회를 지칭하는 단어인 ‘디지털 격차’는 바이럴이 되었다. 노동절약 기계와 지능 기계가 앞으로 우리의 삶과 일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 내러티브는 비약적인 경제 활황과 침체뿐만 아니라 공공 정책을 촉발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증시 호황 뒤로 이어지는 끔찍한 주가 폭락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이런 내러티브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이콧boycott’이라는 단어는 1880년대부터 세계 대부분의 언어에 – 각 언어의 특이성을 반영해 – 침투했다. 찰스 C. 보이콧Charles C. Boycott이 이런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불매운동을 발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유명한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찰스 보이콧은 아일랜드에서 영국인 지주를 대신해 토지를 관리하고 있었다. 1880년에 흉년이 들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10퍼센트 깎아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소작인들은 25퍼센트를 요구했다. 그는 거절했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소작인 연맹은 보이콧에게 대항하고자 지역사회에 호소했고, 1880년 10월 보이콧은 <런던 타임스>에 자신이 얼마나 큰 고충을 겪고 있는지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 결과적으로 보이콧은 그 자체로 경제적 내러티브의 중심이 되었다. 보이콧 내러티브는 다른 내러티브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반응에 중점을 두었다. 이 경우에는 바로 사업가들에 대한 분노였다. 또한 보이콧 내러티브는 분노에서 탄생한 음모론을 동반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때로 임금 삭감이 필수적일 수도 있음을 이해하겠지만, 임금 삭감에 대한 정당화는 그리 전염성이 높은 내러티브가 아니다. 노동조합 대표들은 조합원에게 고용주가 어떤 곤경을 겪고 있는지 설명해 줄 이유가 없었다. 

 

 

 가장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은 대개 전쟁 중에 발생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정부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신속하게 거둬들이지 못하게 되고, 그러니까 돈을 더 많이 찍어내는 데에만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널리 퍼지지 못하기 대문에 대중은 정확한 정황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지금 미국에는 ‘옆집 존스씨네와 똑같이’라는 내러티브가 강하게 퍼져있는 듯 보인다.

 

 

 나는 주식에 관한 나 자신 또는 다른 이들의 체계적 조사를 들여다본 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관 투자가는 이 진술에 67퍼센트가 동의했지만 개인 투자가의 경우에는 23퍼센트에 그쳤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개별 종목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입소문을 통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