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ISSUE 695, Marvelling at Voluntary Structural Experiments: Kim Jaekyung + JK-AR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이러한 계획들은 추진력이 사그라들었지만, 1970년대는 경주의 역사와 전통이 국가에 의해 주요 관광자원으로 재구성되는 시기였다. 지금 인기 있는 황리단길도 1970년대 지정된 한식 건축물 지구에서 시작됐다. 이때 관광지에 부여된 역사와 전통은 신라 유적지로서 맥락보다는 조선시대 혹은 일제 식민지기 한옥의 모방에 가까웠다. 이렇게 천년 수도 경주는 재단된 전통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전통에 현대의 기술과 기능을 가미한 결과는 ‘기와지붕과 콘크리트의 조합’이라는 역사관광 시설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진다. 이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한옥의 외양(특히 기와지붕)과 전통적 배치는 여전히 경주에 세워지고 정비되는 건물들의 풍경을 제어하는 강력한 도시계획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김재경: 맞다. 심사에서 “왜 굳이 이런 구조로 지어야 하냐, 굳이 가운데에 이런 나무를 세워야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답을 하기 어렵다. 그 질문을 하는 사람과 나는 아예 다른 관점에서 건축을 하는 거다.

양수인: 건축가의 일 중에는 건물을 짓는 것도 있지만, 건축을 하는 부분도 있다. 궁극적으로 건축을 하려면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그런 질문을 맞닥뜨린다.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그 답을 잘 이해하고 건축을 해야 건축 역사의 긴 흐름의 중앙이든 변두리든 스스로를 어딘가에 잘 위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스스로 하기도 하고, 남이 해주기도 한다. 어쩔 땐 사후에 일어나기도 하고. 그러니 지금 그걸 모른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더 많은 작업을 한 후에 그걸 모아 보면서 위치를 찾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도 ‘왜 이걸 하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니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김재경: 필연적 긴장감. 그게 건축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목표인 것 같다.

 

 

 

 <패턴 랭귀지>(1977)에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도시의 주거 건물은 6층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거주자는 거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이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감을 넘어 사회적 단절로 이어진다. 그렇게 도시는 점차 비인간적 공간으로 추상화되고 거리의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즉시성은 사라지게 된다. 알렉산더의 이러한 시각은 도시의 활력을 ‘인간적 스케일’에서 찾고자 했던 제인 제이콥스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제이콥스는 거리를 공동체의 무대로 바라보며, 사람들이 걸으며 마주치고 교류하는 보행 중심의 도시를 옹호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민음사, 2026(3판 11쇄)

 

 

 

 어쨌든 때는 12월이고 그랬으니 공기는 마녀의 젖꼭지만큼이나 찼고 그 멍청한 언덕 꼭대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침대에 앉았다. “독감은 어떤가요, 선생님?”

 “아이야,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그때는 의사를 불러야겠지.” 우리의 스펜서가 말했다. 그는 자기 말에 자지러졌다.

 

 

 

 짐 쌀 때 한 가지 약간 우울한 게 있었다. 어머니가 사실상 방금, 그러니까 이틀 전에 보내준 그 신품 스케이트를 싸야 했다. 그게 우울했다. 어머니가 스폴딩에 가서 판매원에게 백만가지 멍청한 질문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 그런데 여기서 나는 다시 잘리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몹시 슬펐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자살하는 거였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내가 땅에 떨어지는 즉시 누가 나를 덮어 줄 거라는 확신만 있었다면 아마 그랬을 거다. 내가 완전 피투성이일 때 멍청한 인간들 무리가 목을 길게 빼고 나를 구경하는 건 원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죽으면 누군가 좀 양식이 있어 그냥 강이나 그런 데 던져주면 겁나 좋겠다. 빌어먹을 공동묘지에 처박아 두는 것만은 제발. 일요일에 사람들이 와서 꽃다발을 배 위에 올려놓는 등 그 모든 헛짓거리를 하는 것만은 제발. 죽었는데 누가 꽃을 원하겠는가?

 

 

 

 “나도 죽은 거 알아! 내가 그걸 모른다고 생각해? 그래도 나는 그 애를 좋아할 수 있어. 안 그래? 누가 죽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 그냥 멈추게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참 나 – 특히 지금 살아 있고 그렇다는 걸 우리가 아는 사람들보다 그 사람이 천 배쯤 착할 때는.”

 

 

 

 “야, 이거 다는 필요 없어. 그냥 두 장만 줘. 그거면 돼. 농담 아냐 – 자.” 나는 돌려주려 했지만 아이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다 가져가도 돼. 갚으면 되잖아. 연극 볼 때 가져와.”

 “이게 얼마야, 참 나?”

 “8달러 85센트. 65센트네. 내가 좀 썼어.”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울었지만 울기는 울었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우리의 피비는 겁나 겁에 질렸고 나에게 다가와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했지만 일단 울기 시작하며 젠장 갑자기 그냥 멈출 수는 없는 거다. 나는 울 때도 여전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이는 내 목을 팔로 끌어안았다. 나도 아이를 팔로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러고도 오랫동안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러다 숨 막혀 죽거나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아, 나 때문에 가엾은 우리의 피비는 젠장 겁에 질렸다.

 

 

 

 “우리 둘 다 그냥 멋지지. 그 코트 벗어라.” 그는 내 코트를 받아 걸었다. “네 품에 어제 태어난 아기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무 데도 갈 데가 없고 눈썹에는 눈송이가 쌓이고.” 가끔 그는 아주 재치가 있다.

 

 

 

 많은 사람, 특히 여기에 한 사람 있는 그 정신 분석가가 계속 다음 가을에 학교에 돌아가면 노력을 할 거냐고 묻는다. 정말 멍청한 질문이다. 내 의견으로는. 내 말은 해 보기도 전에 어떻게 할 건지 어떻게 아느냐는 거다. 답, 모른다.

 

 

 

 내가 아는 유일한 거, 나는 이 이야기에서 들먹인 모든 사람이 좀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심지어 우리의 스트래들레이터와 애클리까지도. 그 빌어먹을 모리스도 보고 싶은 것 같다. 웃긴다. 아무한테도 아무 이야기도 절대 하지 마라. 하게 되면 모두 보고 싶어진다.

 

 

 

SPACE공간, ISSUE 694, Why Gunsan?- Projcet Re/Turning Gunsan

 

 

 

 리터닝 군산은 우정자본이 쌓아 올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리터닝 군산을 이끄는 송성진(공유인 유한회사 대표)은 군산에서 가장 두텁고 짙은 우정자본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운영해 온 군산의 대표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라디소 페르두또’(이하 파라디소)는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이곳 출신들이 만든 업장들은 이후에도 파라디소 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파라디소 생태계’를 형성한다.

 

 지역 출신 멤버들이 주축이 된 온전한 민간 주도 지방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리터닝 군산은 자재비, 인건비 상승으로 2024년 초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했다. 그때, 파라디소 생태계에 속한 동네 선후배 가게 주인들과 지인 40명은 이자에 대한 언급도 없이 8억 원을 선뜻 모아주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낭만 채권단’이라 이름 붙였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이 현상을 하다 못해 학연•지연•혈연을 들어서라도 설명하고 싶었지만, 이들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응원과 오래된 우정 이외에는 어느 하나 공통분모가 없었다. 뚜렷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이들의 행보 역시 군산다운 탁류적 우정자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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