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짬이 나면 폭스바겐 인쇄광고 카피들을 베껴 보곤 한다.
나남출판사에서 나온 <딱정벌레에게 배우는 광고발상법>을 한 권 사서
매일 인쇄광고 3개씩 카피를 베껴 쓰는 연습을 하라고
인턴이었던 내게 LG애드에서 오신 한 CW대리님이 조언하였던 것이다.
이 책은 무려 2만 8천원이나 하는데
책에 딱히 깊이 있는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세계 최고의 캠페인으로 불린 폭스바겐 인쇄 자료를 주욱 실어 놓고
당시의 상황을 약간 설명해 놓은 정도이다.
(대관절, 광고관련 책들은 필요이상으로 비싼 것 같다.
책의 분량과 내용을 감안하면 이 책이 비싼 이유는 2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폭스바겐 광고 소유권자에게 지불하는 비용
다른 하나는, 비싼 값이라도 꾸역꾸역 사주는 수요에 대한 믿음(?))
하루는 열심히 카피를 베끼고 있는데
대홍기획의 한 CW대리님이
한글로 번역된 카피를 베끼는 게 무슨 소용 있냐? 라고 말씀하셨다.
한글로 번역된 영문카피를 베끼느니 차라리 한글 카피를 베끼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그 말도 옳으신 말씀이다.
이분 앞에선 네네 대리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분 앞에선 네네 대리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라고 대답한 나는,
저 대리님이 보고 있을 때는 책을 꺼내서 베끼다가도
저 대리님이 지나칠 때는 스윽 책을 감추었는데,
나중에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나는 번역 문체가 마음에 들고, 번역 문체 나름의 개성에 호감을 지니고 있다.
시집을 제외하고
소설과 산문과 만화책과 영화의 경우
나는 한국 것보다 외국 것을 더 많이 읽었다.
특히 소설의 경우 번역된 외국 책을 읽은 비율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개인적으로 내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들이
‘프랑스 콩쿠르’, ‘노벨문학상’, ‘아쿠타카와상’의 수상작들인데 반해
이상문학상 작품이나 기타 한국 문학상 수상작품들은 나와 잘 맞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나는
한국 토종 문장만큼이나 번역 문장이 편안하며 기껍다.
번역가를 일종의 작가로 볼 것이냐, 단순히 번역노동자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도
나는 작가로 본다.
매우 숙련된 번역가라 하더라도, 외국 서적을 번역하는데 들이는 공이나
정신적인 치댐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 회화 책이야 뜻만 통하면 된다 치지만,
소설이라도 한 편 번역 할라 치면, 이건 영어 재주만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찌개 맛 죽이네!”에 담긴 독특한 정서와 느낌을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찌개 맛”을 모르는 이국 사람에게 이것을 그 나라 말로 전달한다는 것은
거의 “창작”의 수준이다.
여기서의 “찌개 맛”이란 단순히 찌개를 먹어본 사람이 감지하는 그 개인적인 맛이 아니라,
“찌개 맛”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수의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그 특유의 맛 정서,
를 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탕에 들어가서 내뱉는 “시원하다”에 담긴 특유의 정서를
hot 또는 cool이란 단어로 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식의 과정을 허술하게 넘기지 않고 머리 빠지도록 고민하는 것이
번역작가라고 한다.
더구나 한국의 문단이란 한국의 광고계만큼이나 좁아서(그래도 그보단 크겠지만)
실력을 인정 받는 번역 작가는 몇 명 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민음사에서 2006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번역본을 출판하려 한다.”고 하면
번역작가 내지는 일반작가들에게도 그 소식은 금방 들어온다.
그리고서 주목한다. 과연 누가…
무슨 말인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는 노벨문학상 작품을
한국의 누군가가 번역해서 책이 출판된다면
한국의 문학교수나 작가들은 대부분 누가 번역했는지에 관심을 가지며 볼 테고
특히나 교수들 중에는 불문과교수, 영문과교수, 중문과교수, 일문과교수들이
각각 일가견을 가지고 그 문체를 볼 테고
때문에 엄하게 번역했다간 자칫
좋은 작품 망쳐먹은 놈으로, 매장 비슷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몇 십 년 전에 나온, 샤르트르나 카프카 등의 번역 서적들인데
한문이 뒤섞인, 이거 한국말 맞아? 싶게 번역된 그런 책들을 내놓게 되면
출판사나 번역작가나 도매로 망신살이 뻗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소설 번역 작가 중 가장 인기 높은 작가는 ‘김난주씨’이다.
하루키, 류, 바나나 등의 소설은 대부분 이 분이 번역한 것들이다.(--;;아닌가…)
출판사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소설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번역가에게는 물론 일을 주지 않고, 김난주씨 같은 스타급 번역가에게는
일이 밀려있다.
이 ‘김난주씨’가 번역한 것들만 주욱 보더라도
내 개인적으로는 바나나의 작품들은 그 맛을 잘 못 살리는 것 같고
하루키나 요시다슈이치의 작품들은 꽤 잘 살리는 것 같다.
그러면 ‘김난주씨’가 번역한 바나나의 소설은 기피하고
새로운 번역가가 바나나의 소설을 번역할 경우 찾아 읽어보게 된다.
내가, 내내 울면서 보던 만화가 은하철도 999인데
그건 사실 초등학생에게 보여주는 건 잔인한 짓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난, 그 만화를 보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인데 꽤 오래 간다.
코난,은 언제나 신이 나서 보았다.
이것들도 모두 번역된 작품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번역된 문장이라서
베껴 쓰기를 기피하기 보다는
번역 문장 특유의 성싱함과 어색함을 무척 사랑하는 것 같다.
‘코란’을 읽어보기는커녕 구경 조차 한 번 해본 적 없는 한국사람들에게
2006년 노벨 문학상 작가의 <내 이름은 빨강>을 번역해준
이난아씨의 수고가 아주 만족스럽다.
화가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인데, 문체에서 색감과 이국적 느낌이 잘 사는 것 같다.
그에 비한다면 사실
박현준씨가 번역한 <딱정벌레에게 배우는 광고발상법>은 매우 몹시 상당히
불만스럽긴 하다.
그러나, 폭스바겐 광고를 영문으로 보고 즐기고 배운 한국 사람들이
매우 많은 상황에서 이 책을 번역하려면 상당한 부담감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자기 개성을 감추고
결과적으로 뻣뻣하고 딴딴해진 문체의 카피를
내가 베껴 쓰고 있기는 한데, 나름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몇 십 년 전, 외국 대행사의 한 카피라이터가 이걸 영어로 쓴 것을
한국의 누군가가 번역한 것을
다시 내가 베끼면서 원작자의 감성을 느껴보려고 노력해본다.
내 개인적으로는 한국광고의 카피들은 상당히
직설적이며 딱딱하고 남성적인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장 뒤에 “-자” “- ㅂ시다” “-라”로 끝나는 건 다 싫어한다.
때문에, 울어라! 깨워라! 부딪혀라! 등등의 카피가 들어간 광고제품은
무조건 기피하는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남자여! 주목 받아라!” 는 싫고
“가끔은 주목 받는 생이고 싶다(오규원)”는 좋다.
폭스바겐 카피는 강압적이지 않고, 친구가 말하는 것 같은 카피이다.
나는 계속 베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