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아르테, 2016(1판 1쇄)
괜찮아. 고백하자면, 나도 그게 궁금하구나. 만약 내가 걷는 게 힘들어지고, 혼자 남아서, 더이상 사람들 눈에도 잘 안 띄고, 얼굴도 전과 같지 않아져서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게 되면, 그래서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에게 놀라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전에 불리던 대로 불릴 수 있을까? 그건 그러니까, 새로운 존재가 아닐까? 게다가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대체 무엇일까?
교실들은 잠깐 고여 있다가 다시 씻겨내려가곤 하는 해안가의 바위웅덩이이자 하나의 작은 우주였다.
우리는 차가워진 트럭 안에 그대로 앉아서 기다렸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때 할아버지는 아마 무척 추웠을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트럭이 있는 쪽으로 나오길 바랐지만, 왜 그러지 않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기도하고 싶었지만, 신이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오직 물고기뿐이었다. 실루엣 하나가 잠시 다가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계속 거기 그렇게 있었지만, 느낄 수만 있을 뿐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우리 엄마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 엄마가 말했다. 내가 저 문을 넘어간다면 그건 과거의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거랑 같아. 다 지워지는 거야. 엄마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어. 저 사람이 떠나면서 엄마는 나쁜 사람으로
생을 끝낸 거야. 저 사람이 있었다면 엄마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
그 모든 순간순간 우리는 안심할 수 없었지. 그게 어떤 건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게 아니야. 하룻밤이 얼마나 길 수 있는지, 네가 느껴봐야 알게 될 거야. 그 밤들이 모두 합쳐져서 수백 밤이 되고 그 이상이 되면 거래 같은 게 이루어지지.
신과의 거래 말이야. 너는 어떤 끔찍한 일을 겪고도 견뎌낼 수 있어.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신이 거래가 끝났다고 하면, 네가 이미 대가를 치른 후에 말이다. 그러면 너는 온몸이 갈가리 찢긴 친구들을 보게
되는 거야. 평화로웠던 어느 날 인형처럼 뜯긴 친구들을 말이야.
지금 생각한 건데, 셰프가 될까?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셰프들은 항상 일이 늦게 끝나잖아. 의사들은 레지던트 근무가 끝이 없는데다 밤근무가 많고, 변호사도 시간이 말도 안 되게 많이 드는데다 매일같이 싸워야 하잖아.
비즈니스 스쿨이야말로 제일 큰 사기꾼들 소굴이지. 도대체 인생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있긴 한 거야?
핵심은, 시급을 받는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할아버지가 말했다. 난 평생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미안하구나, 너 역시 그렇게 오랫동안 거기에 얽매이게 해서. 엔진 옆에 붙어서서 육체노동을 하던 그 많고 많은 시간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상기시켜주었지.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았지.
나는 우리가 수염상어나 크라운 로치였으면 하고 바랐다. 한 방 구석에서 함께 모여 서로 포개져서 잠들고 싶었다. 공기조차 새어들어오지 않는 물속, 그 한 가지 원소로만 둘러싸인 채 말이다.
그새 눈이 더 많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세상이 온통 하얬다. 차가 속도를 높이자 눈송이가 공중에서 커브를 그리며 날리다가 앞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우리가 자석이라도 되는 듯이, 우리가 엄청난 힘으로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듯이.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던 그날을 돌아볼 때면 나는 엄마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를, 할아버지가 나타나기 이전을, 그런 무게에 억눌려 있을 때를 떠올려본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침대 위로 쓰러질 때, 나를 끌어당겨
침대 위로 쓰러지던 그때, 씬벵이처럼 내가 엄마에게 꼭 달라붙어 있던 그때, 부드럽고도 강한 엄마의 산 아래 손과 발을 묻던 그때,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전부라고 느꼈던 바로 그때를 말이다.
그리스 비극은 ‘우리가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가’라는 어떤 불가사의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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