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도 무얼 찍어야 할 지 모르겠고

어떤 식으로 찍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많이 찍다보면 자기 길을 발견할 것이다, 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렇게 밥을 많이 먹었는데도

미식가는 드물지 않은가

 

그렇게 수 십년을 걸었는데도

진짜 아름답게 걸을 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혹은 자기 방식대로라든지

 

누구나 태어난 후로 줄곧 옷을 챙겨입지만

대부분 별 것 아닌 꼬라지로 나다니고

 

 

지금까지는 마치 자료사진처럼

무언 가를 쓰기 위한 자료로서 사진을 찍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사진이 사진이기를 바라는 만큼

 

사진만으로 충분한 사진을 찍고 싶다

 

 

 

무얼 찍을까 어떻게 찍을까, 이것 참 어렵네 누가 힌트좀...

 

 

 

 

 

 

 

2

씨네큐브에서 영화 <천국을 향하여>를 보고 나오면서 찍은 사진.

에스칼레이터 밑이 투명한 판넬로 싸여있어서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대학교 때 쓴 시 중에

 

여자친구에게 밥을 사주기 위해 명동 밀리오레 앞에서 시간을 기다리며

수치심에 붉게 머리를 물들인 사람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면목 없는 개미들처럼 줄줄이 에스칼레이터 밑으로 사라진다고

대충 그런 식으로 쓴 게 있다.

 

누구에게나 한 명 혹은 몇 명씩 여자친구가 있었을테고

언젠가는 그들이 다 사라지고 없다.

 

대체 그 어마어마한 숫자의 여자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가끔은 백화점이나 쇼핑몰 에스칼레이터 밑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끔

새벽에 싱크대 밑 수납장을 열어보면 바퀴벌레가 잔뜩 모여서

깜짝이야, 들켰잖아, 라고 말하고 사라지듯이

백화점 에스칼레이터를 갑자기 뜯어버리면

누군가들의 사라진 무수히 많은 여자친구들이 그 안에 바글바글 모여있을 것 같다.

 

 

여자들은 백화점으로 가고

돌아오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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