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약속이 있을 때면

조금 일찍 나가서 늘

서울대학병원 안에서 약속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럴 경우

오늘의 약속이 무척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거나

반대로

오늘의 약속이 너무나 하찮게 여겨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곳은

생명과 죽음의 약속이 이행되거나 잠시 지각되는 곳이니까

 

 

 

 

 

 

 

나는 크리스마스 때에도 내내 일을 했다고 투덜거리지만

이곳은

연중 어느 휴일에 가더라도 북적거리는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이다

 

 

그곳 지하에 있는 중환자보호자대기실에는

좁은 의자들 사이에 꾹꾹 눌러앉아 안내 방송을 기다리거나 TV를 보는 보호자들이 있다

안내방송은 물론 보호자를 찾는 방송이며

대부분은 '돌아가셨습니다' 혹은 '치료가 불가능하니 임종 맞으실 장소로 모시세요'라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환자와

보호자와

간호사와

의사와

경비원들과

직원들과

의자들과

소독약과

문들

복도를 보고 나서

약속 장소에 나가면

 

 

미안해~ 차가 막혀서 내가 좀 늦었지?

하며 방실거리는 누군가를 만나 밥이나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날은

아주 많이 마시게 되거나

마시다 말고 집으로 돌아와 버리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항상 북적대는 대학로에는

지하도나 건널목 젊은이들 사이사이로

보자기나 모자를 눌러 쓴 암환자들이

한 둘 씩, 둘 셋 씩 돌아다니고는 한다는 것을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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