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폴레트 켈리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어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남편에게 13년간 맞고 살다가 탈출한 미국 여성 폴레트 켈리가 쓴 시 중의 일부이다. 시가 길어서 모두 실을 경우 내가 뭐라 글을 쓸 공간이 없고, 그렇게 되면 난 남의 시나 베껴 올려놓고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지급될 것이 뻔한 원고료를 받아야 하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내 마음 편하고 싶다는 이유로 시의 일부만 올려놓았음을 밝힌다.

 나는 이 시를 EBS 프로그램인 <지식채널e>에서 보았다. <지식채널e>에서 다루는 지식들을 가만히 살펴보면서 이런 구분을 하게 되었다. 이 지식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도 아니고, 우리가 모르는 지식도 아니고, 모르지만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구나.

그런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지구온난화, 인종차별, 가정폭력, 전쟁, 학살, 불균형과 집단주의 등 인간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는 누군가의 고통인 건 무슨 이유일까? 그건 그만큼 인간들이 엄청나게 나쁜 짓들을 많이 했다는 것이고, 지금도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고, 그만큼 그에 대해 대부분은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용산미군 부대를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정부가 합의했다는 걸 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벌써 2003년의 일이고 2006년에 기어코 거주하던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너무 외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용산미군부대가 강남구 대치동이나 삼성동으로 이전하기로 했다면 아마도 대한민국 모두의 흥미를 끌었을 것이고, 당신과 나도 알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곳 주민들은 평택 주민들처럼 무기력하게 쫓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논리다. 우리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내 주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면서 그 커피를 아프리카 다섯 살 어린이가 재배했건 말건, 그러다 죽었건 말건 누가 애써 들려주기 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한림대라는 지방대 학생이 혹시 겪을 지 모를 차별이나 불평등, 불리함, 세상의 그릇된 시선 또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한림대생이 술 마시며 떠드는 세상의 불합리함이나 지방대생으로서 겪는 난처함 같은 얘기를 듣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럴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있으면 그걸로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겠네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 속이 상하는가?  하지만 재미있는 건, 2006년 수능 시험 치르고 비관하여 자살한 여고생 소식에 대해 죽을 용기 있으면 그 용기로 살겠네!라고 말하던 한림대생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혼란스럽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혼란의 사도 조커가 없는 건 우리가 이미 충분히 혼란스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변에 남자친구에게 매 맞는 여자가 있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조사해보면 약 30%의 미혼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맞아본 경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건 남의 고통인가? 그들이 못난 탓인가?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택시를 탈 때 불안을 느껴야 한다. 이건 어떤가? 이것도 여성들이 못난 탓인가? 당신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으면 그 딸 또한 택시를 탈 때마다 불안을 느껴야 한다.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에 여성단체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여성단체에서 알려준 바에 따르면 2005년까지 매년 교내 강간 사건이나 강간 미수가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났었는데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은 그에 관심이 있는지도.

 우리는 왜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에 대해선 너무 다양한 의견이 있기 때문에 약간 독특한 의견 하나를 알려주고 싶다. 쇼펜하우어가 생각한 건데, 만약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하나의 꿈이라면 그 속의 우리들은 과연 각각의 꿈인 걸까?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느 날 꿈을 꿨는데 내 꿈속에 100명이 등장한다면, 100명은 다 내 안에서 나온 것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하나의 꿈이라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도, 매맞는 여성도, 차별 받는 노동자도, 당신도, 나도, 결국은 하나라는 것이다. 내 발가락이 곪아간다면 그 고통을 내 입술은 못 느끼겠지만 결국은 모두의 고통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갖고 있는 양심이나 마음, 서로 떨어져있어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발가락과 입술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려주는 신경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시를 통해서 누군가 신호를 보낸다면 당신은 어떻게든 그 신호를 받아야 한다. 대답해 보라. 받았는가, 뭔가를,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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