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지하철 객실 중앙에
엉거주춤 서있는 사람은
누구나 구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새벽안개 묻은 점퍼를 입고
몸을 추스리는 사람은 누구나
팔이나 다리
인생의 일부가 모자란 장애인처럼 보입니다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30만원짜리 헤어샵에 들렀다가
친구 결혼식장으로 가는 장애인이 보입니다
그녀가 구걸하듯 시계를 봅니다
핸드폰에 매달려 마치
난 핸드폰만도 못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한 사람
어제 있었던 일을 굳이 오늘 또 얘기하는 사람은
어제를 구걸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내가 너무 행복해서
이 불쌍한 사람들을 몰라봤습니다
오늘부터는 나도 그들처럼
불쌍하게 웃겠습니다
길게 늘어지는 지하철의 풍경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