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적 보편성은 이런 정도가 아닐까" 하는

나만의 보편성이 존재하는데.

나같은 경우는 워낙 어려서부터 한국을 싫어하고 외국인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 안의 "세계적 보편성은 이정도가 아닐까" 와

다른 한국사람들의 "세계적 보편성은 이정도가 아닐까"가 다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내 안의 세계적 보편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여성들은 남자친구에 대한 집착과 통제의 욕구가 강하다고 느껴왔는데.

이런 얘기를 한국에 사는 보통의 여성들에게 할 경우 그들은 동의하지 못하곤 했다.

그 이유는 남자로서 여자로서의 '세계적 보편성'도 다를 뿐더러

나와 그들 하나하나의 개인으로서의 '세계적 보편성'도 다르기 때문에

동의 못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옛날 누군가가 내게 "어른들 말씀은 역시 다 옳아"라고 했을 때

내 안의 '세계적 보편성'이 크게 반응하며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반응했던 것처럼.

어쨌거나 그당시 그에게는 "어른들 말씀은 역시 다 옳아"가 그의 안에 있는 보편성의 세계에서

보편적이었던 것일 테고.

나는 어른들 말씀이 다 옳았다면 여전히 우린 노비시대고, 북어와 여자는 삼일에 한번씩 패야 하고. 데모했던 민주화 투사들 희생자들은 존재할 수 없으며.. 등등등 수없이 예를 들었지만 어쨌거나 그에게는 씨도 안 먹혔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우리 안의 '세계는 당연히 이런 거 아냐 라는 보편성'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다르다.

 

그렇다면 한국여자는 남자친구에 대한 집착이나 통제의 욕구가 강하다. 는 의견을

내가 아니라. 외국인여자가 한국인 여자에게 말한다면?

예를 들어 의식수준에 있어서 미국이 한국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여성에게.

미국 여성이 "우리 나라 기준에서는 그렇게 일일이 남자가 어디서 뭐하는지를 보고하길 바라는 건 이상한 일이야" 라고 말한다면?

그건 미국기준이고, 여긴 한국이야. 그러니까 한국적 보편성을 얘기해야지. 라고 말하진 않을까?

심지어 평상시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의식 기준으로 한국의 미달된 사고나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이럴 때는 한국적 보편성이 세계적 보편성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건 아닐까?

 

엄밀히 말해 '세계적 보편성'이라는 건 측량하기 힘든 허구일 뿐이고 '내가 바라는 이상적 세상'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의식수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관계의 모습. 등등.

 

그런데 궁금한 건 어째서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여성들에 비해 한국여성들이 남자친구에 대한 집착이나 간섭

통제욕구가 강한거지? 이유없이 그럴리는 없고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오늘 조심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한국에선 여자가 오랫동안 약자였고, 불평등을 겪어왔고, 여전히 여성으로서 불평등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어쩌면 그 원인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알게 모르게 한국에선 여자가 나서는 걸 금기시하고, 나댄다고 폄하하고, 그러면서 남자에 비해 수동적 존재

남자에 비해 얌전한 존재. 남자에 비해 의존적 존재로 만들어 왔고. 실제로 여성은 남성과 불평등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약자적 입장에서 - 남자친구에 대한 간섭이나 집착이나 통제욕구 - 가 서구 여성에 비해 발달하게 된 건 아닐까? 만약 한국에 여전히 남아있는 여자에 대해 강요하는 보수성이나 불평등이 사라진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한 50여년 후에,

 

미국여성이나 유럽여성이 한국여성처럼 일일이 남친에게 어디서 뭐하는지 카톡을 보내라 하고 통제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까. 아니면 한국여성이 미국여성이나 유럽여성처럼 "잘 모르겠어요. 이상해요. 왜 남친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톡으로 보고하게 하는 거죠?"처럼 변화하게 될까.

 

그때의 세계의 보편성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의 보편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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