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못된 아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속으로는 나쁜 생각을 하고 입으로는 거짓말을 한다고, 그러니까 행복하지 않은 거라고.

 

자신을 꺼내주는 사람에게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다짐하던,

그러나 몇 년이고 기다리다가 점차 증오가 생겨

자신을 꺼내는 인간을 헤치겠다고 다짐을 하던

어느 요정처럼.

 

차츰, 난

정말 착해지려고 노력했는데 왜 행복해지지 않는 걸까,

궁금이 의문이 억울함이 화가 분노가 안도가 되었다.

 

아, 이럴 바엔 나쁘게 살자고.

 

그건 내가 생각해도 어린 생각치고는 아주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눈물은 억울함에서 나오고,

한 반의 누군가가 누군가의 돈을 훔쳤거나

한 반의 누군가가 돈을 잃어버리고서는 누가 훔쳐 간 줄로 알고 난리를 치거나

관여되지 않은 내가 회초리를 맞고 무릎을 꿇고 팔과 다리에 근육통이 생기고

눈이 감겨지고 게다가 죄책감까지 강요당해야 했던,

 

또 여러가지들...

 

 

 

 

그리고 18년 정도가 지난 어느날

그러니까 오늘

 

문득,

 

난 왜 이렇게 시를 못쓸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

착하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하지가 않았다.

 

착한데 시까지 못썼다면 너무 억울해서 불행해졌을 테니까...

 

 

 

대체 왜 행복해지지 않는 걸까,

행복하려 의도해서 바락바락 행복해지려 노력해서 행복에 길들여지는 그런 행복말고,

개처럼 쫓아가서 얻어 먹는 삽사리한 행복 말고,

 

모시러 오는 행복

저절러 얻는 행복

차분히 감기는 행복

어쩔 줄 모르겠는 행복

뿌리쳐도 되돌아와 목에 엉키는 부드러운 향의 행복

왜 그렇게 되지 않는 걸까.

 

이쯤 오면 어설픈 감상에 젖어

착하지 않아서 어쩌구 할 맘은 사라진다

있어야 할 게 없는 심정이다.

 

사라진 자신의 다리를 찾아 배회하는 유령처럼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났어야 하는 눈알 두 개, 불알 두 개, 콧 구멍 두 개

그런 것처럼 갖고 태어났어야 할 게 없는 기분이다.

 

팔 하나가 없이 태어난 아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 법은 두 가지로 나뉘어 질 것 같다.

왜 내겐 없어! 하는 억울함과

없어도 살만하다는 억지 행복감

 

세상에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태어나는 인간 같은 건 없다고 누가 얘기해준다면

조금 편하게 잠들 수 있을까

 

왜 누구는 행복해지는 재능을 타고 난 것만 같은지 모른다.

자꾸, 그런 사람을 마주치게 되는 건지 모른다.

 

질투와 소유욕, 분노, 호기심, 감탄, 부러움, 친해지고 싶음과 멀어지고 싶음,

흡사 사랑처럼...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빛처럼 뜨거운 비닐하우스  (0) 2006.05.23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0) 2006.05.19
날고 싶다  (0) 2006.05.17
향수병  (0) 2006.05.17
이빨  (0) 2006.05.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