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조말선
구겨진 콘돔이 하얗게 부풀었다
독한 가난을 피임하는
막막한 터널
얇은 막이 터지도록 땀을 쏟았다
땀방울마다 해 하나씩 갇혀
시퍼런 욕망을 속성 재배하였다
근심은 뜯어낼수록 수북이 자랐다
산고가 식은 저물녘
문이 열리고
허리 굽은 아버지가 태어났다
볓빛처럼 뜨거운 비닐하우스
학교 다닐 때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Energy flower’라는 곡을 들으면서 참 야릇한 느낌이라고 생각할 때, 한 후배가 “이건 참 염세적이어서 좋아, 빠져나올 수가 없어”라고 말해서, 정말 그렇다고 둘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부터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음악은 어디서 태어나는 걸까, 였다. 누구에게나 귀와 마음과 입이 있는데 어째서 누구는 음악을 만들고, 누구는 따라 부르기만 하는 걸까,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대한민국 출산율 저조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그것들을 낳아놓고 버리자니 가슴이 아프고, 그렇다고 돌보고 키우자니 앞이 깜깜한 것이다. 그래서 낳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음악이 그렇다, 고 생각한다. 좋은 아이(음악)를 낳기 위해서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듣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을 해야 하고, 수 개월 이상을 몸과 마음이 아파야 하고, 갈등이 있어야 하고, 막상 낳고 나면 그때부터 좋은 엄마(작가)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만든 노래가 아니라 ‘노동요’처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고, 그러면서 누구나 조금씩 만들어가는 노래는 뭘까, 난잡성교에 의한 공동 사생아?
조말선의 ‘비닐하우스’라는 시는, 이런 상상에 찬물을 붓고 다른 상상을 부채질한다. 그래서 나는 시원하다. 아버지란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 라는 질문에 이 시는 대답해주고 있다. 그야 물론 아버지들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동시에 태어난다. 그러나 세상에 똑같이 태어나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똑같이 태어나는 아버지도 없다. 시 속의 아버지는 비닐 하우스 속에서 ‘욕망’과 ‘근심’과 교배된다. ‘구겨진 콘돔’ 속에서 ‘욕망’, ‘근심’과 교배되어 태어난 아버지라니 얼마나 독특한가 싶어 기분이 좋다. 그런데 막상 태어난 아버지의 모습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라 또 기분이 좋다.
다르지만 결국 같은 것들. ‘아버지들’, ‘가난들’, ‘욕망들’, ‘근심들’ 그리고 시들, 음악들…. 악보를 모르더라도 사람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초등학생들도 자기네끼리 노래를 만들 어 부르고, 농부와 어부도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노래 하나가 새로 태어나는 순간은 그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이번 주에는 저마다 자신의 ‘주제가’나 ‘테마송’을 하나씩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건 24세에 내가 만든 노래의 가사이다. 어느 가을 밤 한철 노래일 거고 앞으로 아주 맘에 드는 노래를 만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직까지 이 노래만 부르고 있다.
<별빛처럼 뜨거운>
나는 별빛이 뜨거워서/ 세수를 하고 왔어/ 그런데 너무 뜨거워서/ 세수를 해도/나는 참지 못해/ 이 뜨거움을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이 뜨거움을 너에게 전해주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