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0일

 

 

 

어젯밤 술을 마신 때문인지 늦잠을 잤어. 아니면 누적되어 있었던 거야. 피로든지, 질투나 욕구 같은 것들이. 아침 식사를 거르고 서둘러 일을 하러 나서는데 골목길에서 개를 한 마리 보았어. 집도, 가족도 없는 더러운 개였어. 배가 고픈, 가볍고 진한 개 발걸음이었어. 우리집과 제기역 사이 골목길에는 아침마다 생선 좌판이 열려. 시장은 아니지만, 트럭에 싣고 온 장삿꾼이 바닥에 늘어놓고는 아침 손님을 맞는 거야. 그런데 오늘따라 배달을 가셨는지 장삿꾼이 없고 생선 좌판만 있더군. 개는 그 생선이 먹고 싶었는가봐. 급하고 초조하게 그리로 다가갔어. 하지만 좌판 주위 1미터 이내로는 접근을 못하고 서성거렸어. 이 개도 여기 주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봐. 혹시나 어디서 갑자기 뛰어나와 소리 지르며 벽돌이라도 던질까봐, 그래서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튀어나온 살점에 피가 차갑게 엉겨 붙어서 절뚝거리다가 어딘선가 먼지덩어리가 되어 죽어버릴까봐 겁이 났던 거야. 이 개는 배고픈 마음에, 그리고 생선 임자에 대한 걱정에 갈팡질팡 하고 있었어. 수퍼에라도 가서 먹을 걸 사다주고 싶었지만 출근시간이 급박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어. 그 개는 결국 생선을 먹지 못했을 거야. 5분이건 10분이건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거봐, 결국 주인이 나타날 줄 알았어, 하면서 눈치껏 도망칠 거야. 배고픈 개야. 또 쓰레기 봉투를 파먹으러 가겠지.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이름을 가진 나와, 이름 없는 개 사에에는 아주 커다란 거리가 있어. 나는 아침을 거르고 바지를 입으며, 출근 뒤에 매점에서 무얼 사먹을까 고민했기 때문이지. 또 어젯밤 술자리에서는 고작 여덟 개 정도가 한 접시에 담겨져 있고, 그 가격이 13,000원이나 하는 베이컨 밤말이를 먹기도 했단 말야. 그러나 또, 이름 없는 개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쓰레기 봉지를 끌어안기도 하고, 아무 곳에나 똥을 싸기도 하지. 눈이 오는 날에 고추를 달랑거리며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개와 나 사이의 차이였고, 각기 다른 종류의 슬픔이었던 것 같아. 정맥경화라도 일어난 것인지 내 발걸음은 허벅지부터 아래로 뻐근했어. 출근 전철 안에서 내 마음은 개처럼 누워서 헉헉거리는 것 같았어. 빈 자리도 많았고 앉고 싶기도 했지만, 그곳에 앉아 팔짱을 끼고 꾸벅거리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보니, 절대 앉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었어. 배가 고파왔지만, 오늘 퇴근시간 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했어. 그것은 3월 5일 토요일에 오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이름 없는 개와 나 사이의 동일한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오늘도 나는 술을 마시고 들어가겠지. 가로등 길 아래서 생선 냄새만을 맡으며 쫑쫑거리는 그 개를 다시 만나면, 오늘 아침부터 오후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슬픔과, 1942년 한 해동안 굶어죽은 300만 명의 중국인들의 고통을 나누고 싶어. 참고, 참으면, 배고픔이라든지 슬픔은 줄어드는 것일까. 아니면 콜룸부스 이전, 평평한 세상의 바다처럼, 어느 수간 우주로 뚝, 떨어져버리는 걸까.

개야. 아주 오래전,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거짓이 아니야. 나는 티 없고, 욕심이 적고, 배품을 즐길 줄 알고, 긍정적이며,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왜냐하면 주변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야. 할머니는 나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셨지만, 다른 집 아이와 차별을 하셨어. 내가 우대를 받고 남의집 아이가 못한 대접을 받는 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야. 하지만 그 아이 집의 부모는 또 나를 차별하셨어. 적어도 어린이들만큼은 차별 받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야. 학교 폭력을 경험한 초등학생이 10명 중 한 명이라고, 강력대처를 하겠다는 기사를 보았어. 강력대처를 하지 않으면, 나쁜 아이들이 계속 괴롭힐 거야. 하지만 강력대처라는 방법이 또 어떤 아이들에게는 겁을 주겠지. 공정하게 처벌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공정이라는 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나는 이제 아름다운 사람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졌어, 개야. 그건 결국, 자신을 속이거나 남들을 속이는 것과 같아. 내가 나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추해, 남들이 나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도 추해. 왜냐하면 나는 공정하지 않으니까. 이름 없는 개야. 변변찮은 김, 이, 박, 유, 황, 송 성을 쓰는 사람들과 너는 서로 공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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