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아내

 

 

 

 

 

내 아내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투정도 없고 타박도 없이

돈이 필요하다면 옆집에서 빌려다 주던 사람

그것 갚느라 짧은 다리 바둥대던 사람

별 특징도 없이

안 보는 데서 한 껏 혀를 내밀고 참아내는

그런 류의 곡물 같은 사람이었다

 

전기밥솥 하나 새로 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8년만에 겨우 대학 마친 아들이

쌀 떨어지듯 집으로 떨어져 내려오자

좀 더 큰 밥솥을 사서는

작동법을 물어보았을 뿐이다

 

1년 내내 밥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작동법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전기 코드가 빠진 날 없는 사람이었다

쌀을 꾸고 전기를 꾸고

내 꿈을 꾸어가던 사람이었다

 

잡곡밥을 달라는 이에겐 잡곡밥을

식은밥을 달라는 이에겐 식은 밥을 눌러 담아주었다

아들들은 늘 엄만 옛날 사람이라며

몇 숟가락씩 덜어내고 먹었다

 

바깥에서의 이사람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매일 빈 밥솥을 이고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온 사람인데

찌그러진 날 오죽 많았을 텐데

 

이 여자의 브로치며 머리삔들은 항상 노란색 포장테이프 같았다

 

거저 얻은 아내가

나를 낳아 아내가 된 이 여자가

전깃줄 마냥 혀를 빼물고 나를 키워내도록

감사를 씨부렁거리는 일 한 번 없이

나는 살쪘을 뿐이다

- 나는 지금도 살찐 여자의 궁핍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이혼 당했다

밥솥의 벽을 뚫고 파내려가던 피곤으로

아내의 죽음으로

 

- 라고 시를 쓴다

시가 죽이된다

 

설익은 채로 

아마도 나는, 이런 식으로 늙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아버지였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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