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올렸었는지 안 올렸었는지 잘 모르겠다.

 

올초 배구 시즌 막바지에 흥국생명 핑크레이더스를 응원하러 가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김연경 선수의 나이는 이제 막 20세였고

내 나이는 이제 막 29세였다.

 

여자배구선수를 응원하는 남자,라는 포지셔닝은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더구나

나이 어린 여자 배구선수를 응원하는 나이가 좀 더 많은 남자,라는 포지셔닝은

어쩐지 이래선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관습적으로 받게 된다.

 

내 책상에 김연경 사진을 몇 장 붙여놨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여자인가 봐요?" 이렇게 묻는다.

"좋아하는 선수"라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드물다.

 

여자배구라서 그런가.

하고서 끄덕끄덕 이해하고 넘어가버리면, 분명 나도 똑같은 마쵸이즘에 수긍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남자 배구선수가 여자 배구선수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여자 배구선수와 남자 배구선수 실력 차이가 확연한 만큼

실력이 떨어지는 여자 배구의 존재 이유는 희미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면 안다.

여자 배구에는 남자 배구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결국,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승부의 긴장감, 승부의 맛을 즐긴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스포츠 종류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고

각기 다른 그 형태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줄줄이 풀어 설명하기는 귀찮고

남자 배구의 형태미와 여자 배구의 형태미는 다르고

당연히 즐기는 美의 영역도 다르다는 것이고

때문에, 여자배구에는 여자 배구에 빠질 충분한 요인들이 가지가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여자예요?"하고 물어보니

경기장을 갈 때 자연히 신경이 쓰이게 된다.

 

아무튼, 어린 것들이 손으로 쓴 플랜카드와 질적 차이를 보이기 위해서

저만한 사이즈로 프린트를 해서 보드에 붙여서 응원하러 가져 갔었다.

 

그런데 참, 사진이나 내 표정이나 그런 것들이

음습해보인다. 약간 변태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건 내가, 감정을 숨기고 감추고 쑥스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한 상태로

표정을 짓다보니 그렇게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김연경 선수를 좋아한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표정을 짓는다면

같은 상황이라도 느낌은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이 똑같은 시츄에이션을 솔직하며 활기찬 중학생 정도의 남자애가 하고 있다면

그다지 음습해 보이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는 20대 후반의 청년이,

여전히 그런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로이기 때문에

이런 식이다.

 

나는 편견을 버리고 싶다.

29살에 20살 여자 배구 선수를 좋아하는 모습이 얼마든지

꿈 많은 14살 소년이 여자 배구 선수를 좋아하는 모습 정도의 밝기와 건조함으로

보여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용납만 한다면,

그리고 용납 하지 않더라도.

 

김연경 선수는 나이 20세에 국가대표다.

나는 나이 29세에 뭐 하나도 국가대표가 될 만한 것이 없다.

적어도,

좋아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표현하고 싶은 방법대로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국가대표였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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