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하기로는 한국은 정녕 프라이버시를 지켜나가기 힘든 나라다.

네티즌 수사대가 발달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문화 자체가 터울 없이 터놓고 얘기하는 성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친하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천연덕스럽게 친구가 펼쳐놓은 수첩이나 노트 등을 훑어보기도 한다.

심지어 엄마는 자식들의 일기를 읽거나

더 나아가서 아이들은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쓰기도 한다.

 

쓰던 노트가 다 되어서

책장을 뒤져 새 노트를 하나 꺼내었다.

오래 전에 쓰려다 말고 넣어둔 노트인 모양

누군가의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행여 누군가 볼까 싶은 나는 펜으로 부글부글부글

이름을 덧칠하여 지워버렸다.

 

그러고보면

무언가를 써놓고서 그것을 들켜 부끄러울까 하여

부글부글 지워버리는 짓을 아주 오랜만에 한 것 같아

잠시 감상에 젖었다.

 

사실 이런 경험이 있다면

대부분은 좋아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적었던 것일 테다.

그리고 지워 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창피할까봐, 혹은 가슴 아파서... 겠지.

 

창피한 이유를 따지자면

오르지 못할 나무를 보고 있다는 창피함이거나

평소 관리해온 자신의 이미지가 깨지는 데서 오는 창피함 같은 것일 테고

 

가슴 아픈 이유를 따지자면

써 놓아도 내 것이 되지 않는 그 사람 때문이거나

써 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써 놓은 것을 참을 수 없는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중에 다시 이 흔적을 내가 보더라도

누군가의 이름이었고 또 지웠다는 걸 기억할 자신은 없다.

 

뭐야 이거, 하고선 지나치겠지.

뭐야 이거, 하고선 지나간 오늘 하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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