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사의 평범한 일기
①
기사들이 전철에 오른다
아니 대부분 병사들이다 농사를 짓던
②
꿈틀거리는 지하
밭을 본지 너무 오래되었다
재갈 무는 소리
녹슬었지만 닦아내기 귀찮은 슬픔
성으로 향하는 병사들
여전히 기사가 되고 싶은 쉰 다섯 살 먹은 비루함
③
휴가를 달랬다 형벌을 당했다
매장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전우여- 지금이 휴가 챙길 때인가
적들은 어제도 밤을 새었다네
오기의 날을 꺼내게 없으면 시늉이라도
④
죽은 자들의 얼굴과 입 냄새 속에
나만은 꽃처럼 피어난다는 착각이 날아가 명중한다
과녁은 언제나 우리 편에 있다
⑤
관성에 희망을 묶어 던지면
죽어라 날아간다
눈발 속에 화살이 섞여 날리고
참새 잡는 바구니 속에 질문 몇 개가 버려져 있다
⑥
때로는 뭔가 과녁에 콱 콱 박히는 기분으로 밥을 먹는다
⑦
영주님 얼굴은 아주 멀리서나 보인다
가끔씩 그의 눈동자 속에 내가 말하는 흙으로 발견된다
영주님이 마차와 마부를 새로 바꾸셨다고 한다
⑧
부상당한 마음에 붕대를 감는다
쌀로 뜬 막걸리를 칭칭 감고 있으면
신하들을 대동한 영주가 격려차 방문하기도 한다
막걸리에 아편을 탄 것처럼 찜찜하다
⑨
싸움이 코 앞인데 코를 잃어버렸다
급여 협상 때 잘려나갔다
숨이라도 덜 쉬며 살아야 한다
⑩
적들의 칼날 앞에서 웃는 낯에 귀족들이 박수를 보낸다
쳐내고 쳐내도 계속해서 들이치는 칼날들
적은 끊임이 없고 끝은 나에게서 나리라
⑪
귀가 길 눈에 띈 볍씨를 보고 환각을 겪는다
시멘트 땅을 발로 헤치다 다시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⑫
소에게 여물을 먹이다 꿈에서 깬다
일어나 앉은 자리엔 언제나 기사 보다 병사가 있다
⑬
농기구처럼 예절을 팽개쳐버린 병사들이
어깨를 들이밀고 틈만 나면 눈을 감는다
배가 찬 전철이 모퉁이를 돌며 트림을 한다
'pl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서있는다 (0) | 2008.09.23 |
---|---|
모기는 항상 그런다 (0) | 2008.09.16 |
너가 울면 (0) | 2008.09.10 |
열쇠가 맞지 않는다 (0) | 2008.09.09 |
내가 빨래라면 (0) | 2008.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