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사의 평범한 일기

 

 

 

기사들이 전철에 오른다

아니 대부분 병사들이다 농사를 짓던

 

꿈틀거리는 지하

밭을 본지 너무 오래되었다

재갈 무는 소리

녹슬었지만 닦아내기 귀찮은 슬픔

성으로 향하는 병사들

여전히 기사가 되고 싶은 쉰 다섯 살 먹은 비루함

 

휴가를 달랬다 형벌을 당했다

매장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전우여- 지금이 휴가 챙길 때인가

적들은 어제도 밤을 새었다네

오기의 날을 꺼내게 없으면 시늉이라도

 

죽은 자들의 얼굴과 입 냄새 속에

나만은 꽃처럼 피어난다는 착각이 날아가 명중한다

과녁은 언제나 우리 편에 있다

 

관성에 희망을 묶어 던지면

죽어라 날아간다

눈발 속에 화살이 섞여 날리고

참새 잡는 바구니 속에 질문 몇 개가 버려져 있다

 

때로는 뭔가 과녁에 콱 콱 박히는 기분으로 밥을 먹는다

 

영주님 얼굴은 아주 멀리서나 보인다

가끔씩 그의 눈동자 속에 내가 말하는 흙으로 발견된다

영주님이 마차와 마부를 새로 바꾸셨다고 한다

 

부상당한 마음에 붕대를 감는다

쌀로 뜬 막걸리를 칭칭 감고 있으면

신하들을 대동한 영주가 격려차 방문하기도 한다

막걸리에 아편을 탄 것처럼 찜찜하다

 

싸움이 코 앞인데 코를 잃어버렸다

급여 협상 때 잘려나갔다

숨이라도 덜 쉬며 살아야 한다

 

적들의 칼날 앞에서 웃는 낯에 귀족들이 박수를 보낸다

쳐내고 쳐내도 계속해서 들이치는 칼날들

적은 끊임이 없고 끝은 나에게서 나리라

 

귀가 길 눈에 띈 볍씨를 보고 환각을 겪는다

시멘트 땅을 발로 헤치다 다시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소에게 여물을 먹이다 꿈에서 깬다

일어나 앉은 자리엔 언제나 기사 보다 병사가 있다

 

농기구처럼 예절을 팽개쳐버린 병사들이

어깨를 들이밀고 틈만 나면 눈을 감는다

배가 찬 전철이 모퉁이를 돌며 트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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