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아름다운 여자와는 다리를 보며 얘기하고 싶다

 

 

 

여자의 검은 스타킹이 내 마음을 조인다

그래서 내 마음이 검은 것

여자 다리의 온기와 모공의 허전함과

털이 잘려나간 피부의 부스러기가 묻어 나온다

여자가 스타킹을 갈아입는, 산소가 나긋해지는 시간

내 마음의 굳은살도 잠시 껍질을 벗는다

한강을 건너며 생각한다

지금은 스타킹을 씌운 자정이다

한강 위를 떠도는 바람 맞은 안개가

스타킹에 스며들고 어디서 누가 대체 무얼 가지고

어떻게 만든 건지 모르는 스타킹의 실크가

강물 위에 반사되어 일렁인다

강이 뚜벅 뚜벅 걸어다닌다

자신을 건너는 신도림행 마지막 열차를 바라보며

한강은 생각한다

조심스런 밤이다 누군가 날 스타킹으로 생각한다

스타킹을 빠져 나간 열차 안에는

다리를 꼬아 강물을 휘젓는 여자의 다리가 있다

다리가 아름다운 여자와는 다리를 보며 얘기하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지

시를 쓸 때면 내가 미친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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