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없이 산다

 

 

 

진정 없이 산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걸 갖고 있다. 내가 갖고자 했던 거의 모든 걸 갖고 있다.

내 방과 직업, 소득, 여자친구, CD들, 라디오, 원하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는 기쁨.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하고 무기력 할까.

누구 말마따나 예전 어렵던 때의 긴장감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도 같고

평생을 쏟아 부을 근사한 꿈 하나 없이 살아가기 때문인 듯도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정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일에 대해서 내 방에 대해서 여자친구에 대해서 지금의 삶에 대해서

이것 아니면 안돼- 하는 진정을 담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돈을 많이 준다면 당장이라도 회사를 옮길 것이고,

근사한 레스토랑 사장을 시켜준다면 지금의 내 일을 단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태희나 소녀시대 티파니의 사랑 고백을 받는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헤어질 확률이 매우 높아질 것 같고,

근사한 집을 구한다면 지금의 옥탑방을 당장 벗어날 테니까.

결국 진정이 없다면 집도, 일도, 여자친구도 가졌어도 가진 게 아니다.

그저 걸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살갗 깊숙이 총체적으로 와 닿고 감싸지고 밀착되는 느낌 없이

지나가던 누가 툭 치면 벗겨져나갈 그런 옷처럼 말이다.

진정.

내 것에 대한 소중함을 진심으로 느끼는 것.

그것은 비교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오롯이 그것, 그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

타워팰리스와도 렉서스와도 티파니와도 삼성그룹의 보스자리와도

비교되지 않고 비교될 수 없는 그런 것.

오롯한 내 것과 오롯한 지금을 어떻게 하면 발견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방에 누워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내 방과 여자친구를 발견하지 못하는 장님과 같다.

내가 이상한가.

다들 그렇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