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벌이를 하면서 밥을 굶는다
우리 회사의 저녁 먹는 시간은
하지만
바람이 불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대로 저녁 먹는 시간이 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밥을 굶는데 머리가 아픈 이유를 내 머리는 알지 못했고,
내 머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더욱 억울함을 느꼈다.
잠을 자지 못한 날에는 마음이 아프다.
때로는 잠 잘 시간에도 일을 하면서 청춘의 푸른 빛이
양파 껍질 색으로 변해가는 걸 바라보아야 한다.
마음이 아픈데도 결국 잠에서 깨는 이유는
삶과 생계가 아픔보다 무섭기 때문이다.
회사 사무실에서 서식하는 우리들은 일주일에 다섯 번 내지
여섯 번 정도를 헤어지고 다섯 번 내지 여섯 번 정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돈 벌이를 한다.
연못 바위에 뒤덮여 온몸으로 양분을 빨아들이는 이끼류처럼
사무실에 뒤덮여 산다.
때로는 헤어져있는 시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덕분에
이곳이 군대 같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나이든 사람들은
군대 상관처럼 대접받길 좋아하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든다.
회사 선후배 동료를 영어로는 partner or friend 라고 한다는데
한국의 대부분 회사들은 상사, 부하, 동급의 개념으로 회사 생활을 한다.
상사, 부하, 동급을 자칫 글로벌하게 partner나 friend로 해석할 경우
개념 없는 인간으로 취급되며 그나마 이끼로써의 삶도 퇴출 당하고
젖은 바위의 그늘 한 조각 얻지 못하고 뙤약볕으로 쫓겨나 말라가야 한다.
회사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일수록 바위 가장 깊은 곳의 축축한 그늘을
닮아있다. 머리가 더 아플까 봐 양갱을 하나 까서 입에 넣는다.
회사의 상사, 부하, 동급 동료들은 밥 먹으러 갈 생각은 없으면서도
누가 먹을 것 하나를 꺼내 허기를 채우려 하면 우르르 몰려가 다 뺏어
먹는다. 그냥 차라리 밥을 먹으러 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치지만
상사, 부하, 동급, 회사, 생태의 개념을 떠올리며 참아내야 한다.
밥 벌이를 하기 위해 회사에 붙어있으면서도
이렇게 배고픔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 때로 아이러니하다.
다들 일이 그렇게 중요해서 집에도 안 가고, 밥도 안 가고
회의며 일에 매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일이 되지도 않는다. 어제 했던 일이 결국 오늘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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