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시스터, 레이먼드 챈들러, 북하우스, 2005(초판발행)

 

 

 

 

 

 

 어서 들어오세요. 안에는 나와 커다란 청파리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5분 동안이나 청파리가 내려앉기를 기다리면서 눈으로 쫓고 있었다. 파리는 내려앉으려 하지 않았다. 파리는 단지 날갯짓이나 하면서 팔리아치(1892년 레온카발로가 작곡한 이탈리아의 오페라 제목-옮긴이)의 서곡을 부르고 싶어했다.

 

 

 

 윙윙대는 소리가 멈추자 그 자리에 파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떤 식으로든 술을 마시는 탐정을 고용하고픈 생각은 없어요. 전 심지어 흡연도 찬성하지 않아요.

 오렌지 껍질을 벗기는 건 괜찮겠습니까?

 

 

 

 나는 사진 두 장을 보았다. 그중 한 장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별로 소용이 없었다. 다른 한 장은 키가 크고 여윈 젊은 남자의 비교적 잘 나온 사진으로, 가느다란 눈에 얇고 한일자로 다문 입, 뾰족한 턱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기대했던 대로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내 신발에 진흙이 묻었다면 바로 지적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에게 단지 내가 하릴없이 너무 심심해서라고 말해줄 마음은 없었다. 어쩌면 또한 봄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눈 속에 담긴, 캔자스의 맨해튼보다도 훨씬 오래된 무언가 때문에.

 

 

 

 좋아. 그럼 그 사람들이 오빠를 겁주지 못했다고 칩시다. 그냥 한쪽 다리를 자르고 그걸로 머리를 두들겨 팼다고 하지. 그럼 그땐 오빠가 어떻게 했겠소? 경영 개선 협회(Better Business Bureau(BBB)-1972년 미국과 캐나다를 기반으로 해서 설립된 협회로 불공정 거래에 대한 소비자 불만 신고를 받고 조정 업무를 하는 기관-옮긴이)에 편지라도 썼을까?

 

 

 

 절 놀리시는군요.

 그녀는 예의바르게 말했다. 목소리가 하숙집의 수프처럼 싸늘했다.

 

 

 

 내가 어디 사는지 잊지 마쇼. 이것도 사는 거라고 말할 수 있으면 말이지만.

 

 

 

 그런 날들도 있는 법이다. 만나는 사람이 다 멍청이인 날. 그런 날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하게 된다.

 

 

 

 방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오래된 양탄자와 가구 기름, 칙칙하게 익명으로 살아가는 수천 명의 초라한 생활의 냄새가 풍겼다.

 

 

 

 마치 아무도 굳이 열어주려고 하지 않는 싸구려 호텔 방문을 두드리다가 인생을 허비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어쨌거나 이제는 내가 말한 것처럼 신사가 되었고, 신사들은 돌아다니면서 얼음 송곳을 사람들에게 꽂아넣거나 하는 일은 안 하거든. 그런 일을 해줄 사람을 고용하는 거지.

 

 

 

 시간과, 장소와, 사랑하는 이는 결코 함께 있는 법이 없나니.

 그게 뭐죠?

 그녀는 턱 끝으로 나를 내던져버리려고 했지만, 그다지 멋진 솜씨는 못 되었다.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 미국의 시인. 지금 필립 말로가 인용한 시는 1883년 발간된 시집 Jococeria에 수록된 Never the time and place의 첫 두 행이다-옮긴이). 시인 말이오. 자동권총 말고. 당신은 자동권총 쪽을 더 선호할 것 같지만.

 

 

 

 여전히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헛되이 써버린 시간의 잔재를 치우고 있는지, 열린 문에서 복도로 빛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젖은 모래를 담은 양동이처럼 느껴졌다.

 

 

 

 왜 사람들이 공갈범에게 돈을 주는지 항상 궁금했었지. 아무것도 살 수 없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돈을 주지. 어떤 때는 주고 또 주고 계속 주기도 하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십이 번 무대입니다. 지금 가보시렵니까?

 시간이 되시면요.

 저야 홍보가 일이니까요. 그러자고 시간이 있는 거죠.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하루에 이십오 달러라.

 적고 외로운 돈이지.

 아주 외로운가요?

 등대처럼 외롭지.

 

 

 

 사랑요?

 그는 혀끝에서 그 말을 천천히 늘어뜨리더니 마지막까지 맛보았다. 총이 발사된 뒤 포연이 공기중에 남는 것처럼 씁쓸한 미소가 그 말이 떠난 뒤에도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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