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일요일이라 치자. 자고 눈을 뜨면 월요일 아침일 것이다. 월요일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모든 가능한 가능성의 개수들을 세어보자면 못해도 백 가지 이상이겠지. 하지만 나는 또 예상된
행동, 눈을 뜨고 씻고 회사로 가는 일련의 동작만을 하게 될 것이다. 누가 감시하며 억지로 끌고
다니며 그렇게 시키지 않는데도 그런다는 것에 뜨끔하다. 나는 내일 눈을 뜨자마자 여권을 꺼내
서 공항으로 갈 수도 있고 단골 바를 찾아가 새로운 바텐더 여기 있소 할 수도 있고 또 안성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거나 경찰서에 찾아가 죄를 지을까 겁나요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수많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매주 월요일이면 하던 그 일련의 행동을 다시 반복할 것이다. 이런 게
관성의 힘일지도 몸른다. 관성의 힘에는 다른 가능한 가능성들을 불가능한 가능성들로 바꿔 버리는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던 걸 계속해야 지난 시간과 행동이 (무형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오지
않은 내일을 더 효율적이거나 도움이 되게 해주는 지도 모른다. 다만 그 법칙에 있어 부작용이란
관성의 힘이 세질수록 그 관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아닐까. 가능성이란 재산에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가령 지금처럼 내일 난 안 하던 짓을 하고싶어 라고
느끼는 나를 그 내가 나에게 내뱉는 언어를 멍충이 취급하거나 무시해야 한다는 것. 내가
예상하지 못한 내일이나 운명을 무시한 주제에 매일이 똑같애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는 게 참
더럽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