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맨, 존 쿳시, 들녘, 2009(초판 1쇄)
숨을 멈추면, 찢긴 살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려고 스멀스멀 기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쩌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상상하라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니 열정은 그의 성격의 일부가 아니다.
사실, 연인으로서는 다소 개 같다고나 할까. ‘개 같다’는 말은 그가 좋아하는 표현이 아니지만 적절한 말이다. 추운 날씨에 껴안고 잘 만한 괜찮은 남자, 무심코 잠자리를 같이 하고 나중에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조차 의심하게 될 만한 그런 유형의 남자.
그의 서재는 마루에서 천장까지 책들로 빼곡하다. 다시는 펼치지 않을 책들이다. 읽을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다.
표정에 관한 부호가 있다면(그는 그걸 의심한다), 일단 그것을 익히게 되면 인간의 입술과 눈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는 부호가 있다면,
폴 레이먼트 당신은 누구죠? 당신의 연애감정이 뭐가 그리 특별하죠? 당신이 인생의 가을에, 그것도 늦가을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진짜 사랑을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남자일 것 같아요?
그녀는 동요하고 있지만 깨끗해요. 다리를 무식하게 절단하는 수술과 전혀 다르게 아주 섬세한 수술을 한 후로, 그녀는 깨끗한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어요. 냄새로 아는 거죠.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은 그래요. 당신도 그녀를 위해 깨끗해지는 게 좋겠어요.
그의 두개골에 바닷물이 부딪는 것 같다. 그가 아는 전부는 자신이 벌써 물속으로 내던져져 깊은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때가 되면 그의 뼈에서 마지막 남은 살점을 뜯어낼 바닷물의 찰싹거림. 그의 눈은 진주가 되고 그의 뼈는 산호가 되고.
죽어간다는 것이 속임수(말을 갖고 하는 속임수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일 뿐이라면, 죽음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서의 딸꾹질에 불과하고 그 후에도 삶이 전처럼 계속되는 거라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까?
“드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할 테니 웃지는 말게. 나는 시간과 역사에 추월당했네. 이 아파트와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추월당했지. 시간에 추월당한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네. 자네도 오래 살게 되면 그리될 걸세.”
“이 모든 것이 한때는 새것이었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도 한때는 새것이었네. 나도 새것이었네. 내가 태어난 시각에 나는 지구에서 가장 새로운 것이었네. 그런 다음 시간이 나한테 작동하기 시작했네.”
당신은 마음의 전문가인 작가인데, 그걸 알고 있었나요? 충분히 깊게 사랑하면 그 사랑은 되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에요.
“마리야나, 당신은 틀렸어요. 전혀 그게 아니에요. 나는 혼란스러운 게 아니요. 불안정할지는 몰라요. 그러나 불안정하다는 것이 정신이상은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더 불안정해야 해요. 전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게 내 생각이에요. 우리는 더 자주, 우리 자신을 흔들어야 해요…”
인생은 외교적인 메모를 주고받는 게 아니에요. 오콩트레르(반대로), 인생은 드라마고 행동이에요. 행동이자 정열이란 말이에요!
영웅처럼 살아요. 고전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잖아요. 주요인물이 되세요. 그렇지 않다면 뭣 때문에 살죠?
그는 일어서서 그녀 앞에 있는 탁자에 기대어 선다. 이번 한 번만은 자신의 목소리가 노래하게 할 수 있을까? 그는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고 말들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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