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19 – 선인장

 

 

 

 

82일 월요일

 

 

 

지치지도 지겨워하지도 않으며 그려대던 그림.

그리고 시와 글들이 잘 나오지 않는 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어쨌건 끊임없이 하던)

감정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저 쏟아 붓는 비처럼 일년 내내 우기처럼

손을 대면 빗물에 손이 잠기고 손에 맞아 튀어 오른 물안개가

얼굴 주위로 산개할 것처럼 감정이 쏟아질 때가 있었는데.

빗방울 하나가 감정에 파문을 만들고

그 파문은 고요한 숲 속 기도원에 종이 울리듯

종일 댕- - 울리며 발끝까지 온몸을 휘돌아

퍼져나가곤 했는데

 

감정이 사라졌다는 건 편리한 일이다. 슬픔이나 분노,

고통이 사그러들었다는 것일 테니까.

반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애정 또한

실종되어 버렸다는 것일 테니까.

 

어쨌거나 감정이 줄어든다는 건,

삶에 흔들림도 적어졌다는 것일 것이다.

좋다면 좋은 거겠지만, 다만 관성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싶어 안타깝다.

감정이 줄어 안타까움도 적다.

어쩔 것인가.

 

몸의 지방은 늘어가며 덩치는 비대해지는데

그 감정은 빼빼 마른 선인장이다.

 

 

 

바람이 불어도

감정에 잎이 없다면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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