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에코의서재, 2010(1판24쇄)
‘생각’을 다시 생각하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화가 폴 호건
피카소Picaso는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수많은 과학자,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상상력이 단순히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상상력이 진실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
-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만일 우리가 무엇을 주시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주시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주의력을 집중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이다.
실제로 많은 화가들은 “손이 그릴 수 없는 것은 눈이 볼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다.
예리한 관찰자들은 모든 종류의 감각정보를 활용한다.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sublimity of the mundane’,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생화학자 스젠트 기요르기는 이렇게 말한다. “발견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관찰’은 감각작용을 ‘이해’하는 일이다.
화가인 파울 클레Paul Klee는 ‘미술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가, 디자이너, 엔지니어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오래된 문제가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사실을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옮겨놓는가? 어떻게 이 마음의 수혈은 이루어지는가?”
더 나아가 수학자 필립 데이비스Philip Davis와 로이벤 허시Reuben Hersh는 추상화는 지성 그 자체의 특징이거나 그것과 동의어라고 단언한다.
스젠트 기요르기의 글은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기로 유명한데 그런 그마저도 가장 명료한 과학논문으로 오토 바르부르크Otto Warburg의 논문을 들었다. 누군가가 명료함의 비결을 물었을 때 바르부르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열여섯 번이나 고쳐씁니다.” 스젠트 기요르기는 그 비결을 자기 식으로 응용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다 씁니다. 그런 다음 쓴 종이를 치우죠. 그러다가 한 달 후에 처음 쓴 것은 보지 않고 다시 씁니다. 두 번째 글이 첫번째 글과 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그렇게 해서 열여섯 번쯤 쓰게 되는데, 글이 더 이상 달라지지 않을 때까지 쓰는 셈이죠.” 스젠트 기요르기의 경우 글을 거듭 써갈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고 본질만 남게 되는 것이다.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Anold Schonberg가 주장한 바와 같이 음악가에게 있어서 음표는 3차원 물체와 같다. 그는 자신이 쓴 글에서 “우리는 칼이나 병, 혹은 시계 같은 물건들이 어디에 있느냐와 상관없이 그것을 인식하고 상상 속에서 재현해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음악가들은 그 방향과 상관없이 음정의 배열을 무의식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음의 배열을 거꾸로 뒤집어볼 수 있고 역방향으로 볼수도 있으며 음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기까지 한다. 그들은 음들간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고 그것을 재배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작곡가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가는 식의 음의 순서보다는 음표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더 많다.
브롤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피아노나 현악기를 가지고 확인할 수 있다 피아노의 아무 건반이나 눌러 A라는 음을 낸다고 하면, 이때 몇 옥티브 위나 아래의 다른 A현도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동조진동현상은 현악기에서도 일어난다. 만일 베이스의 현을 하나 뜯으면 이것과 동일한 음에 맞춰 팀파니가 울릴 것이다. 반대로 해도 마찬가지다. 이 음들이 바로 배음이다 배음은 처음 현의 진동이 다른 현의 진동과 정확히 조응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들이 공명하는 것이다. 드 브롤리는 이러한 상음과 배음이 원자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유추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닌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해야만 우리는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들은 근육이 음표와 소나타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손가락에 이 기억들을 저장한다. 그것은 마치 배우들이 몸의 근육 속에 자세와 몸짓의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같다.
니진스키는 자신이 행한 무용의 혁신에 대해 말로는 거의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단지 그 누구도 두지 않았던 위치에 발을 두었고, 그 누가 했던 것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했을 뿐이었다.
그레이엄 역시 “무용의 논리란 그냥 운동 수준의 그렇고 그런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녀의 말은 춤이란 몸이 공간과 힘과 시간을 이용한 것으로서, 순수한 몸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고하는 것이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 사고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사냥감처럼 생각하라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내 안에 그것이 자라나게 하라
무용수인 아그네스 드 밀Agnes De Mille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것들에 매료되었다. “어렸을 적,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달리고 싶고, 미친 듯 구르고 싶고, 내 몸을 땅 위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무용수나 어린아이에게 공간이란 이런 것을 의미한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떤 학자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조정의 폭은 그의 학문적 영역과 정확히 일치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길이가 백만미터가 넘는 대상을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우주비행사가 틀림없을 것이다. 천 미터에서 백만 미터까지의 길이를 가진 대상을 다루는 사람은 지리학자일 것이다. 가장 큰 건축물이나 기구는 철도나 고속도로를 빼면 고작해야 천 미터 남짓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스케일은1/3미터에서 10미터에 걸쳐 있다. 생물학자들은 길이가 10미터에서1/10,000미터에 걸쳐 있는 대상을 다루며, 생화학자들이 감당 할 수 있는 대상의 길이는1/10,000미터에서1/100,000미터다. 대개의 화학자들이 취급하는 연구대상의 크기는 10-9m에서 10-12m까지다. 이보다 작은 크기는 물리학의 세계에서 취급한다.
흔히 4차원이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아닌 네 번째 공간 차원을 말하는데 오직 간접적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다.
“영어 알파벳 중에서 길게 소리내는 a는 비바람에 탈색된 나무의 색을 연상시키고 프랑스어a는 윤을 낸 상아를 떠오르게 한다. 또 e나 i로 끝나는 말은 노란색을, d는 크림색을, y와 u는 밝은 황금색을 띠고 있다. 이런 글자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라면 나는 ‘올리브색으로 빛나는 놋쇠’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수학이야말로 최대한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과학이다. 영혼의 시인이 되지 않고서는 수학자가 될 수 없다.”
- 수학자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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