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사, W.워런 와거, 교양인, 2009(초판3쇄)
돌이켜보면 분자 사회는 그다지 경이로울 게 없었어. 분자 사회가 이룩한 그 모든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말의 시대적 흐름을 알고 그 흐름을 미래에 적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지. 여러 면에서 분자 사회는 20세기 말의 세계가 두 배로 커진 것과 같았단다 인구와 부富도 두 배, 기업들의 힘도 두 배, 아니 세 배, 불평등도 두 배, 혼란도 두 배로 늘어났지. 과학기술도 두 배로 발전했다. 그리고 물론 이 모든 팽창은 인간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어. 하지만 사회적 게임의 규칙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했단다.
국가 주권이 존속해 있었다는 것은 곧 세계 체제 깊숙한 곳에 비합리성이 똬리를 틀고 있어서 철없는 과대망상광들에 의해 계속 부추김을 받고 있었다는 걸 뜻한단다.
핵무기 확산이 도리어 국제 정치 안정에 기여했다는 주장이었지. 이들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나라들은 빈 협정에 의해 국제 ‘경찰’의 책임을 맡아 왔거나 평화를 사랑하고 안정된, 즉 다시 말해 부유한 나라들이므로 자기 방어가 아니라면 굳이 폭력에 의지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유색 인종이 모두 단일한 계층에 속해 있었던 것은 아니란다. 일부 유색 인종은 중산층에 속해 있었고 이들 중산층의 대부분이 가난한 유색 인종보다는 백인 중산층에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가난한 백인들은 가난한 유색 인종을 멀리하면서 때로 백인 우월주의의 완전한 회복을 약속하는 반동적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지고는 했지. 자신들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만큼이나 이들에게는 관용을 베풀 정신적 여유가 없었단다.
2005년 봄, 또는 각 지역이 위치한 위도에 따라 가을, 세계당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당은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노동자들의 지지와 더불어 소수의 열성 요원들을 두고 있었단다 .
당 대변인은 단순하면서도 진심에서 우러난 메시지를 세계 곳곳에 전파했다. 이를테면 대재앙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지금은 산산이 부서진 세계 체제에 내재해 있던 요소다. 그런 체제가 되살아나면 또다른 재앙, 어쩌면 지구 최후의 대재앙을 불러들일지도 모른다. 대재앙이 몰고 온 충격,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그 충격이야말로 하루빨리 민주적이면서 사회주의적인 세계연방을 건설하라는 메시지다. 이런 식의 주장을 폈단다.
하지만 세계당의 숙적은 누가 뭐라 해도 역시 정통파 종교 공동체의 지도자들, 특히 이슬람 지도자들이었단다. 그들은 세계당의 철학을 무슬림의 권위를 위협하는 직접적 도전으로 받아들였거든.
세계당 연사들은 “자본의 공유는 필수이지만 사회주의 성취를 보장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자본주의 체제는 어떤 사람은 평생 가난에 허덕이고 어떤 사람은 기하급수로 부를 늘려나가는 부와 지위의 불평등 구조로 성장한 체제다.”라고 주장했지.
세계당은 폭력을 선동하지 않는 한 반대당의 활동을 허용했고 공직에 출마하는 것도 가로막지 않았다. 그 밖에도 21세기 내내 권력 지향적이기보다는 이념적 정당이었다는 점 또한 세계당이 인기를 얻는 데 한몫 했단다.
그밖에도 21세기 말은 개발부 장관들이 말하는 이른바 ‘2대1세계 경제’를 성취한 해이기도 해. ‘2대1세계 경제’ 체제에서는 세계연방의 어느 성도 1년 수입이 다른 성의 두 배를 넘을 수 없었단다. 세계연방의 궁극적 목표인 ‘1대1세계 경제’는 아직 달성되지 않았지만, 이 계획 입안자들은 2100년까지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지.
21세기 말은 또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 사람의 수입이 다른 사람의 수입 두 배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 ‘2대1가정 경제’를 달성한 해이기도 하단다.
20세기에는 그것을 ‘집단학살’이라는 용어로 불렀죠. 21세기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죽이는 대신 그들의 문화를 죽이려 한다는 거예요. 그들의 사회를 끝장내고, 국기를 불태우고 기억을 지워버리려 하는 거죠. 저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물론 죽이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목적은 그들 자신의 모습,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말살하는 거예요.
자동차의 개인 소유제 철폐는 소유보다는 사용에 가치를 두는 세계연방의 지배 철학을 강화하는 데도 한몫 했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먹어도 먹어도 늘 허기가 진 것 같은 소유욕의 노예로 전락했거든. 자동차 한 대를 소유하고 나면 한 대를 더 갖고 싶어하고, 나중에는 식구들마다 한 대씩 소유하고 싶어하고, 그렇게 늘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허덕였다. ‘수집가들’은 책, 그림, 옷, 집, 총 등 마음에 드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득히 쌓아놓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어. ‘쇼핑객들’ 또한 그들에 뒤지지 않았고, 진열장의 상품들을 만지작거리거나 쇼팡백에 파묻힐 정도로 물건을 사들이면서 거의 성적인 쾌감까지 느꼈단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존경, 지위 따위를 ‘일’이 아니라 소유한 물건에서 찾으려 했다.
세계연방 시대에는 이런 행동들이 반사회적 정신이상으로 여겨져 얼마 안 있어 그런 행태는 자취를 감추었단다.
가족은 과연 세계연방에서 기대한 목적을 달성했을까? 대답은 그렇지 못했다는 쪽으로 기운다 이혼율이 치솟자 혼인율이 떨어졌거든. 2100년에 이르러서는 이성과 동거하는 사람들 가운데 45퍼센트가 결혼 계약도 없이 평균3년 정도만 같이 사는 상황이 되었다. 커플의 20퍼센트는 필요하면 갱신이 가능한 5년 결혼이나 그룹 결혼 같은, 법이 인정하는 각종 대안적 결혼방법을 택했지. 그룹 결혼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단서가 붙어 있었어.
세계연방 심리학자들이 다양한 지능평가 방법으로 고안한 종합 테스트 결과를 보면, 최초의 인간 고등 종인 호모 사피엔스 알티어(Homo sapiens altior)는 전체 인구의 상위 0.5퍼센트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반수가 상위 0.1퍼센트에 속했지.
당신의 소나타가 6백만 명의 귀에 들어간 것이나 여섯 명의 귀에 들어간 것이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런다고 그 음악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6백만 명 앞에서 연주를 한다고 해서, 그들의 얼굴을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줄 수도 없고, 당신의 작품이 그들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도 없지 않는가?
세계연방의 가장 큰 딜레마는 알칼릴(일명 헤브론)의 사회학자 카데르 바라카트가 2113년에 출간한 <불공평한 자유(The Injustice of Liberty)>에 잘 나와 있단다. 이 책에서 바라카트는 이렇게 썼어. “세계당은 통합, 평등, 민주주의, 자유에 입각한 정부를 수립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뒤늦게 깨닫기라도 한 듯 자유를 꽁무니에 갖다 붙였다.” 그러면서 바라카트는 이렇게 따끔하게 쏘아붙였어. “그보다 중요한 것은 통합, 평등 민주주의는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도 없고, 앞으로도 조화를 이루는 일이 없을 거라는 점이다. 그 까닭은 통합에는 분리의 자유가, 평등에는 기업 활동의 자유가, 민주주의에는 소수자들의 자결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자유는 오직 자유의 상실을 슬퍼할 권리뿐이다.”
자유가 통합, 평등, 민주주의를 위협할 때마다 또는 위협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자유 역시 고통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같은 맥락에서 세계연방은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평등주의적이었고, 평등주의적이라기보다는 단일정부주의적 성격이 더 짙었지.
역사가들의 견해는 22세기 중반 인류 모습이 21세기와는 크게 달라졌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단다. 다시 말해 22세기 중반의 인류는 역사의 지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싸우고 노력하고 인내하며 살았던 인류와 완전히 달랐다는 거지. 도구, 사회구조, 유전형질, 세계관에서 엄청난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거란다. 인간은 ‘완벽해’지지는 못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거지.
서구 문명은 500년 이상이나 아이들에게 획득, 재물, 소유, 이익, 축재, 신용, 자본의 가치를 일깨우는 교육을 해왔다. 또한 서구는 비서구인들에게까지 부르주아지 가치 체계를 확산시켰지. 멋들어진 집, 호화스러운 차, 돈 되는 유가증권을 산처럼 쌓아놓은 남녀들이야말로 모두가 선망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저명’ 인사들이었다. 그 결과 사랑, 신념, 예술 같은 ‘고상한’ 말들을 아무리 지껄여대도, 물질적 부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회가 실제로 존재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계연방 시절에는 부호 계급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단다. 민중들도 인간관계, 심신의 즐거움, 생산적 노동, 그밖의 다른 선한 일들보다 소유를 위에 두는 습관을 버렸다. 심지어 신자본주의자임을 자처한 자유무역당 당원이나 다른 정당원들까지 자본축적보다는 경영의 즐거움을 노래할 정도였지.
어찌됐든 작은당 혁명은 성공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그런 성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앙 정부 기관도 없고, 이름도 없고, 국기도 없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탄생한 거야. 그것이 바로 우리집이란다. 언젠가 공식 명칭을 부여할 기회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을 ‘지구의 집(House of Earth)’이라 부를 수 있겠지.
즉 거의 모든 사상이 진리이므로, 어떤 사상도 자기 자신만이 절대적 진리일 수는 없다는 거지. 그러면서 아바나의 세실리아 루이스 말은 이렇게 인용했단다. “모든 과학은 가설이고, 모든 철학은 은유고, 모든 예술은 환상이고, 모든 진리는 신화다. 모든 것은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이 진리조차, 그리고 이 진리를 인정하는 것조차, 전에 인정한 것을 또 다시 인정하는 것조차, 영원히 다른 것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일반 공동체의 경우, 남자와 여자는 이제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 대신 파사드(pasades, 일시적인 관계를 뜻하는 프랑스어)라는 걸 했다. 사람들은 이성 친구도 사귀고 동성 친구도 사귀었다. 공동체 일에도 열심히 참여했지. 그러면서도 결코 짝을 맺지는 않았단다.
어떤 공동체들은 20세기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방식으로 부부가 실제 동거할 수 있도록 ‘부부 가옥’을 만들어놓고 호기심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단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들을 종합해볼 때 가족은 영원히 분해된 것이 분명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야. 노인들은 대부분 그들 생애 최초의 30년 동안 겪은 경험으로 마음이 프로그램되어 있고 그것은 고정불변이라는 거지. 따라서 어떤 사안에 대해 일정한 문제, 범주, 개념적인 면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자기가 지닌 한 가지 방식으로만 추론을 하고, 행동양식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문제를 확대 해석하거나 편협해지기도 한다는 거야. 또 새롭게 흡수하는 지식의 양과 경험에 관계없이, 성인 시절 내내 늘 똑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추론하고 해석을 한다는구나. 물론 어느 선까지는 사고 과정을 바꿔줄 수 있다고 해. 하지만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조형기 때 각인된 경험들이 너무 깊숙하고 강렬하게 박혀 있어 근본적으로 개조할 수는 없다는 거란다.
“사람의 심장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심장 자체의 이성을 따로 지니고 있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었다.
이 같은 전망 앞에서 공동체들은 우리 인간 종의 운명을 놓고 맹렬한 논쟁을 벌였단다. 우리는 아직도 인간 종인가, 아니면 머지않아 곧 다른 종으로 떨어져나갈 새로운 종들의 하찮은 파편에 불과한 것인가?
전통적 인간 종은 조만간 소멸될 것이다.
인간 종의 유년기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옛날의 단순함은 사라지고 앞에는 우리의 인식을 넘어서는 가능성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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