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걸음, 모옌, 문학동네, 2012(초판2)

 

 

 

 콘돔은 쪽빛 강물 위를 떠다니다가 천천히 동쪽 하류로 떠내려갔다. 물고기 부레 같은 라텍스 콘돔들은 무척 아름다웠다. 청소부 여자는 멍하니 거기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경건한 마음으로 들으며 조용히 기도하는 여신도 같았다.

 작은 강은 인류의 하룻밤 사랑 이야기를 물결에 싣고 망망대해로 흘러갔다. 운 나쁜 정자들은 단배질과 수분으로 분해되었다. 세상에 인류의 배설 통로 역할을 하지 않는 강이 어디 있을까.

 

 

 강물이 구두 안으로 들어왔다. 쉽게 땀이 차는 왕 부국장의 발은 후텁지근하고 컴컴한 구두 속에서 땀을 흘리며 부어가던 중 강물을 만나자 신이 나서 메기처럼 철벅거렸다.

 

 

 "날 돌려보내줘......"

 죽은 자의 신음소리를 들은 쌍둥이 형제는 늙은 말이 한평생 지나다닌 길을 그리워하듯, 스승도 오랜 세월을 보낸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바보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지는 법이다. 그는 자신보다 키가 머리 절반은 더 큰 러시아어과 우등생을 도서관 바닥에 눕혔다. 투샤오잉의 입에서는 러시아의 위대한 언어의 맛이 났다......

 

 

 그가 말한 대로 원숭이들의 눈빛에는 깊고 낭만적인 정취가 풍부하게 깃들어 있었다. 그 눈빛들이 너에게 아득히 먼 곳의 소식을 전해주자 그것들이 너의 몸속으로 깊숙이 쏟아져들어왔다.

 

 

 "난 안 죽었어! 교장이 나한테 살아 있지 말라고 했을 뿐이야! 난 아직 쉰 살도 안 됐다고! 내겐 처자식도 있어. 학교에 숙사를 짓고 있으니까 난 새집에 가서 살 거야! 평생 돼지 간 한번 배불리 먹어본 적 없어! 마오타이주 한 방울도 마셔본 적 없고! 해삼 한번 먹어본 적이 없다고!"

 

 

 너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쌍꺼풀지고 커다란 두 눈, 흉터가 생긴 콧등과 부드럽고 큰 입을 가진 새로운 얼굴이 만들어지자, 과거의 낡은 기억 가운데 어떤 것은 매장되었고, 어떤 것은 매장되는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운 좋게 남아 있는 것들도 지금은 꽃병에 꽂힌 꽃처럼 잠시 싱싱하겠지만 곧 시들고 말라버릴 거라는 것을.

 

 

 그녀의 고통은 절대 철저하지 않았다. 그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다.

 

 

 그해, 그녀는 러시아어와 러시아 혈통 덕분에 채찍과 주먹맛을 충분히 맛보았다. 그녀는 나중에야, 회색, 흰색, 검은색, 파란색 토끼가죽을 벗기기 시작한 후에야 진리를 깨달았다. 어떤 색깔의 토끼든 껍질을 벗겨내면 모두 똑같다는 사실, 어떤 색깔의 토끼든 최후는 모두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투샤오잉이 토기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을 때 깨달은 진리와 장례 미용사가 작업대 앞에서 깨달은 진리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장례미용사가 깨달은 진리는 이랬다. 살아 있을 때 어던 지위에 있었던 인간은 죽은 다음에는 똑같은 냄새를 풍긴다는 것.

 

 

 교사들은 그보다 나이가 어렸다. 거의 모두가 그의 제자나 제자의 제자뻘이었다. 이 물리교사 패거리는 마치 그가 번식해낸 새끼 원숭이들이나 다름없었다.

 

 

 세번째 들이닥친 비는 두번째 비의 끝없는 연장이었다. 그것은 빗발인지 천만 갈래로 뒤얽힌 실타래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억수로 퍼부었다. 그것은 물기둥이었고, 그것은 물의 흐름이었고, 그것은 물을 낳아준 어머니였다. 내리렴, 나는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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