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왜 내게 야박한가.

적어도 이때 쯤이면 이정도 쯤이면

내가 오랫동안 바래온 근사한 선물 하나 정도는 이뤄줘도 되지 않은가.

 

불과 한 달 전에는

그런 선물을 받는가 싶었다.

드디어 내게도 순서가 혹은 자격이 생겼나.

오래도록 기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한발 한발 노력한 보람이 이뤄지는가.

그것도 이토록 완벽하고 기적같은 느낌으로.

 

심지어 10여년 전의 첫사라이 준 배반감 조차

다 무시해버려도 될 정도로의 선물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이젠 나도 어리지 않으니까

그래 인생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인생이 여러 번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인생에 대해 성의 없이 군 것도 아니고

나름 경의를 다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말야.

 

한창 힘들 때 또 엄청 격하게 일이 덮쳐

물어 뜯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뭔가 이겨내긴 했지.

 

그리고 오늘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를 읽다가

그것도 창가에 앉아서 읽다가

그것도 엄청나게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있다가

이렇게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아 썩을 어쩌면 내가 선물을 벌써 받은 건가

인생의 선물을 이미 써버린 건가

지금은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걸 잃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아깝고 억울할 뭔가를 이미 누리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건 도무지 모르겠어!

그냥 내가 원하는 걸 주면 안돼?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이 된다는 건  (0) 2013.06.23
아름다운 건 그냥 두자  (0) 2013.06.23
사람이 왜 무너지나 이해하지 못했지  (0) 2013.06.12
꿈.  (0) 2013.06.09
어쩌면  (0) 2013.06.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