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비가 오는 날엔 또
유재하를 듣는다.
킹스오브컨비언스나 에피톤프로젝트 같은 그런
유럽 스타일의 젠틀하고 쿨하고
과하지 않은 그런 걸 좋아해야지 하다가도
결국 또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태원 글램 그런 곳에서 남들처럼 휘청이다가도
좀더 돈 많고 좀 더 멋진 남녀의 차이, 그리고
음악과 포장의 차이 뿐
이들의 표정이나
이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란 것이
이들의 오고가는 욕망의 수준이
좀 근사한 룸사롱이나
좀 더 있어보이는 나이트와 뭐가 다른가 하다가
아 또 이런
뒤떨어지는 생각을 하다니
멈춰 멈춰 하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캐밥 파는 청년을 보며
저 사람의 나라와 인생을 물끄러미 상상해보는 짓
이 반복된다.
듣도 보도 못하던 LTE 통신망을 어느새
너무나도 자유롭게 누리고
아이폰5에 ios7을 쓰면서도 뭔가 지겹고 뻔해 보이고
정신 없이 치열하게 돌아가는 LTE 시장 2차 전쟁에 참가도 해보며
그렇게 각계 각층에서 혁신과 첨단을 부르짖어도
언어는 여전히 수백 년 전부터 쓰여온 '혁신'과 '첨단'이란
오래 묵은 것으로밖엔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long term evolution 풀어놓고 보면 정말 별 거 없는
의미에 묘한 통쾌감을 느끼다가도
내가 어째
이런 곳에서 이런 사람들과 이렇게
잘도 살아가고 있네.
또 그런 생각.
오늘, 올해 또 비가 온다고
수입산 장화며 새로운 장화 트랜드며
그런 것들이 화재가 되고 소재가 되고 인생이 되겠지.
나도 무광에 포인트 하나 살짝 있는
그런 멋진 장화 하나 장만하고
비 오는 날엔 옷도 허투루 입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아 그런 것 난 모르겠소
비가 오는 날엔 또 유재하를 듣는다.
고등학교 때 일부러 비 쫄딱 맞으며
집까지 걸어가며 부르던
집에가 책가방 뒤집으면 빗물이 철철 흐르던
쪽팔리도록 질척거리고 쪽팔리도록 순진한
노래를
아 이런 내가
광고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 시대에.
유재하가 살아있다면 지금도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이 시대에.
빰빠빠라 밤 빰빰 음빰 빠 따라 디리리디 비밤 두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