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공복




어떤 면에서 어떻게 봐도 나보다 몹시 훌륭하던 신경외과 의사는 서른 여섯에 죽었다.

나는 서른 살 무렵에 한 번 죽고, 덜 죽은 부분도 서른 여섯 정도에는 또 한번 죽었을지 모른다.

일단 죽고 나면, 죽기 전의 나는 없는 거니까 사실 정확히 확인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더라도 요즘은 어쩐지 그렇게 죽고 난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후의 해가 뜨고, 이후의 커피를 마시고, 이후의 공복을 느끼는.

이후의 공복과 이후의 커피라고 다른 커피는 아닐 것이다. 

같은 성분, 같은 가치의 커피겠지만 어쩐지 마시는 사람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좀비’나 ‘흡혈귀’ 같은 걸 생각해낸 걸까

궁금했는데 사실은 살아가면서도 ‘좀비’나 ‘흡혈귀’ 같을 수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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