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이펙트, 페터 회, 현대문학, 2017(초판2쇄)




 나와 같은 실험물리학자들은 공식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느낀다.




 심리학자들은 이런저런 말을 갖다 붙이며 설명하려 들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잔인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이는 언젠가는 부모 품을 떠난다는 사실. 그때쯤 되면 부모들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인간이나

짐승의 어미가 새끼들을 먹여 살리도록 다윈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란 의심에 적잖은 증거를 얻게 된다. 




 두려움에는 이상한 속성이 있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의 몸이나 의식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라 벽이나 바닥 같은 물리적 공간에도 스며든다. 그리고 공기 중에 그 기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아마 이 방과 건물에도

몇 년간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 것이다. 




 나는 그녀가 오랜 세월 혼자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스킨 헝거’는 어떻게 견뎠을까? 죽은 다음에라도 이렇게 쓰다듬어주는 게 옳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이 나를 수잔이라고 부르게 하려고 별짓을 다 했다. 나는 엄마라고 불리기가 싫었다. 마치 무슨 기관이라도 되는 듯 불리는 게 싫었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한 인간으로, 개인으로 바라봐 주길 원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아이들은 블랙홀이에요. 블랙홀 알아요? 모든 에너지와 빛을 흡수하고 하나도 되돌려주지 않는 특이한 공간 말이에요. 그런데 자신을 누구 엄마, 누구 엄마로 부르면서 마지막 남은 개인성마저

포기해버린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배신하는 꼴이라고요. 우리 자신이 우리들을 상대로 한 엄청난 음모의 일부가 되는 거라고요!”




 법의학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쉬지 않고 일한다. 이때만큼 자살과 가정 폭력이 자주 일어나는 때도 없다고 한다. 선물로 인한 과소비, 가족 간의 유대감이 지금 당장 오늘 저녁에 확 살아나야 한다는 기대에서

오는 부담감, 거기에 술이 함께 작용해서 덴마크인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수잔, 세상을 살려면 짖는 소리만큼 이빨도 날카로워야 한단다’




 그녀가 씩 웃었다. 그 미소에 열리지 않을 문은 없을 것 같았다. 정신병동의 문까지도.




 시도해봐야 소용없었다. 인간 사이의 사랑과 정을 이해하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하니까.그리고 그 감정이 학대와 얼마나 가까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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