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 배런 뱁티스트, 터치아트, 2018(초판 발행)
나는 요가의 진정한 목적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나 살면서 진북정렬의 순간을 경험한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살아 있으며, 삶의 모든 면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지금 하고 있는 요가 자세, 나아가 삶이, 그 모습 그대로 완벽함을 경험하게 된다.
매트 위나 삶에서 우리가 취하는 태도는 ‘예스’ 아니면 ‘노’, 단 두 가지뿐이다. ‘예스’에는 가능성의 에너지가 들어 있고, ‘노’에는 저항의 에너지가 들어 있다.
소리 내어 말하든 속으로 속삭이든, 우리는 말을 통해 현실을 창조한다. 자신에게 하는 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말이 우리가 살아갈 에너지를 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스승 중 한 분인 아행가 B. K. S Iyengar는 “아사나는 동작을 그만두고 싶은 그 순간 시작된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바로 그 순간 창조적인 작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세를 지속할지 여부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따라 결정된다.
포기하는 순간, 그 목소리는 여러분에게 뭐라고 속삭이는가? 그만두라고 스스로를 채근할 때 나오는 특정한 대사는 여러분이 자신에 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는 신호다. 이처럼 습관적인 사고방식이 작동하는 순간을 잘 관찰해야
한다. 바로 그 순간에 변화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리는 순간, 여러분의 평소 습관이 즉시 모습을 드러낸다.
잘 살펴보면 포기하는 순간 나오는 것은 겨우 몇 마디 말뿐임을 알 수 있다. 그말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을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앞뒤로 흔들리는 여닫이문일 뿐이다.
- 스즈키 슌류
샛길로 빠지거나, 길을 잃거나, 정렬이 흐트러졌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 있지만, 동시에 멋진 일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방향을 재설정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든 수련에서든 지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솔직해지자. 은신처로 숨으면 안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핵심은 원래 불확실성에 있다. 그 어떤 것도 보장된 것은 없다.
진실을 추구하며 가는 길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막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가보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추락이 아닌 비상할 수 있는 기획가 기다리고 있어 깜짝 놀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벌어진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빚어낸다.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내 생각엔 ‘전혀’ 없다.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은 대부분 통제하는 데에 중독되어 있다. 아사나, 수업, 직장, 결혼, 삶 등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려 한다.
외적 요소가 우리를 구언하거나 인정해 주면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바람이다. 매트 위에서나 밖에서나 올바른 형식을 완성하면 언젠가는 정상에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 없는 믿음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대신 가만히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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