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나
차량 왕래가 많은 버거킹 주차장. 나는 다른 차량을 긁지 않을 걸 알지만 다른 차들이 내 차를 긁지 않을 것을 어떻게 알지? 라는 생각을 하며 창가에 바짝 앉아 5월의 햇빛을 본다. 그러다 보면 어릴 적 키우던 개 생각도 나고 특히나 마당에 쪼리 신고 서성거리면 다가와 발가락 핥아주던 감촉이 떠오른다. 어릴 적 키우던 그 개는 죽었다. 비참하고 무섭게 죽었나? 아마도. 그 똥강아지가 찬찬히 다가와 내 발을 핥을 때면 발가락을 적시던 파도 부서지던 거품 그런 게 떠올랐다. 내 개를 지키지 못한 아이는 커서 자꾸 창 밖을 두리번거린다. 누가 내 차를 긁을까 봐 의심의 눈초리로 창 밖을 살핀다. 하지만 누가 어릴 적 내 개를 들고 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거나 내 어린 시절 개의 비참한 죽음을 바꿀 수 있다거나 그런 제안을 한다면 차가 박살이 나도 괜찮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결국 어린 나는 내 개를 지키지 못함으로 인해서 차 한 대 정도의 손실을 입은 거일 수도 있겠다. 4천만원 정도 부서지고 날아가도 그 개를 지키는 걸 선택할 거라는 가정으로부터의 산정. 개들은 자신의 주인이 나약함을 모른다. 간사함을 비열함을 알지 못하고 킁킁대며 다가와 발을 핥는다. 가끔 찬 파도가 발목을 쓸며 지날 때 뭔지 모를 시원함 개운함이 느껴지듯 개들도 그렇게 사람을 시원하게 만든다. 버거킹 주차장에 또 누군가 조심스레 차를 대고 옆 차를 긁을까 봐 몸을 뒤틀며 내린다. 나는 그가 모래알 같다. 나는 내 개와 해변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