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백상현, 위고, 2017(초판 1쇄)

 

 

 라깡은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les non-dupes errent””라는 명제로 정리했다.

 

 

 우리의 상처가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는 신념,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참사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더욱 커다란 아픔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공동체에 정의가 부재했다는 사실이며, 상처는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슬픔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그것도 가장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혁멱정 정동이다.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우리 자신은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도 아니었다.

 

 

 우리는 자신이 세계를 보고 있다고 믿었던 그러한 방식으로, 냉소적 시선으로, 권력에 의해 응시되고 있을 뿐이었다.

 

 

 만일 슬픔이 우리의 ‘감정emotion’에 진실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감동emouvoir’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흔들림emoyer’을 통해서일 뿐이라고. 세계라는 스펙타클이 공연되는 장소에서 관람객인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슬픔은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것이고, 흔들림 끝에 관객석의 고정된 자리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스펙타클의 이미지를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자리에서 관조할 수 없게 된 사태만이 감정의 가장 진실한 효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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