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있는가?, 브뤼노 라투르, 이음, 2021(초판 1쇄)
놀라움이 가시고 지구생활자들이 결코 어떤 미분화된 공간 속을 사방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게 아니라 점차 이 공간을 건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 나는 나 자신을 다른 많은 지구생활자들 중 한 명의 지구생활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청년들이 “멸종 저항” 운동을 다질 때 거기서 세대들의 후손 – 그리고 그들에게 이 문제는 그저 인류의 운명에만 관련된 게 아니다 – 에 대한 불안 섞인 의구심의 징후를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의 불행은 격리되어 있기는 한데 고유한 의미에서 ‘우리의 집’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물질적 세계’에서 벗어나 ‘영적’ 세계로 향하는 도피에서는 민중을 둔화시키기 위해 사제들이 정제해 만든 아편의 냄새가 아직껏 지나치게 강하게 풍겼다. 그렇다면 ‘물질적’ 세계에서 벗어나 외견상 재물질화된 ‘영적’ 세계로 향한 도피의 경우는 어땠나. 거기서는 이제 실증적 가치들만이, 즉 예의 죄인들을 이후로는 진보, 미래, 자유, 풍요와 같은 하늘나라의 새로운 형상들을 향해 열광시킬 수 있는 그 가치들만이 눈에 띄었을 따름이다.
너는 하늘을 바라볼 때 더 이상 그것에서, 네 조상처럼, 여기 아래쪽의 비참한 삶에 위안이 될 신의 소재지를 보지 않자.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의 영토가 어디인지 말해 보겠다.”
‘몸’의 반대말은 ‘영혼’도, ‘정신’도, ‘의식’도, ‘사유’도 아니라, ‘죽음’이다.
현행의 모든 전투를 그토록 기이하게 만드는 특징은 우리가 분명 전쟁 중임에도, 그리고 그 전쟁이 죽음을 건 전쟁, 섬멸의 전쟁임에도, 그것을 진영들로, 가령 한편이 다른 한편에 승리를 거두리라 상상하면서 두 개 진영으로 나누어 조직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우리가 동일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기 위해서는 자기동일성에 대해 믿어야 하는데, 작금의 위기가 드러내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정체성 개념의 한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의 현황에 이미 이르러 있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전부 변이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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