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는 약속대로 나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은 <씨네코아> V관. 이곳 V관은 하이퍼텍 나다, 광화문 씨네큐브, 서울 아트 시네마 등과 마찬가지로 상영관에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여자, 정혜>가 고모부를 죽이려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서 돌아서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핸드백 바깥으로 칼이 튀어 나왔을 때 황급히 칼을 줍다가 손이 베어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울 때 팝콘을 먹으면 ...
왜냐하면 <아무도 모른다>의 11살 짜리 소년가장이 편의점에서 유통 기한 지난 삼각김밥을 얻어와 먹이던 동생이 의자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여행 가방에 넣어서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보여준다고 하네다 공항까지 가서 밤새 땅을 파고 묻어 줄 때 나초에 치즈를 발라 드시면...
왜냐하면 <거북이도 난다>의 어린 '위성'이 짝사랑하는 어린 여자가 미군에게 강간당해서 13살 정도 어린 나이에 눈 먼 자기 아이를 데리고서 수 백 명의 고아 난민 캠프로 왔을 때 결국 어린 여자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돌 매달아서 연못에 빠뜨려죽이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이것을 알고 뛰어간 지뢰를 밟아서 양팔이 없는 오빠가 절벽에 남긴 동생의 신발을 손이 없어서 입으로 물고 돌아 올 때 핸드폰 들고 "지금 극장이야~" 말하시면...
사람이 싫어지게 되지 않습니까.
보사노바를 들으면서 종로 2가 신호등 뒤 포장마차에서 메르~가 사준 순대볶음을 먹고 있을 때 키가 아주 큰 백인 여자 두 명이 담배를 막 꺼내무는 한국청년한테 담배 한 개비를 달라고 했더니 청년은 잠시 당황해하며 담배를 건네 주었는데 그리고 나서 정작 꾸벅 인사를 한 것은 한국청년이라서 저 청년, 그리고 메르는, 한국에 태어나서 대체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거렸길래 담배를 거저 주고서도 자기도 모르게 꾸벅거리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내가 간혹 보아온 백인들은 얼굴이 빨간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그들이 홍인이 아니고 백인인지 아직까지도 모르겠고, 다만 술을 진탕 마셔 얼굴이 빨개진 동양 아저씨와 또한 술을 진탕 마셔 얼굴이 빨개진 백인 아저씨는 모두 얼굴이 빨개서 그런 모습을 보면 몹시 정다운 반면, 그리 술을 진탕 마셔도 얼굴이 빨개 보이지 않는 흑인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하나님?
메르는 또한 집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져서 검은 비닐 봉지에 쓰레기를 담아서 지하철을 타고 영풍문고까지 가서 그곳 화장실에 쓰레기를 버리고 왔는데 왜 그랬던 걸까.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의 극장문화는 미국에서 수입해 들어온 미국식 극장문화여서
극장 안에서 김밥, 순대, 박카스를 팔던 때부터
그런 식의 "먹으며 보는 곳"으로
그 당시의 미국인과 한국인들 멋대로 만들어낸 문화인데
무려 50년이 지나는 가운데도 아무런 대안, 반박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미국인처럼,
극장 안에서 먹을 것과 친구들과 수다스러움을 찾는 것은 웃기다.
예컨대 이란이나 터키, 이라크에서는 그렇게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며
우즈베이크스탄이나, 브라질, 중국에서도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아이슬란드나 폴란드나 쿠바나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그것과는 다를 것 같은데
팝콘씹히는 소리와 잡담소리를 피해서 매번
영화관을 골라 다니고,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취미가 영화감상이라고 말하는 것을 참고,
차라리 팝콘 감상이나 소음과 함께하는 영화감상이라고 하지 그러냐고,
담소와 화합의 극장문화라고나 할까,
또 그런 와중에 전국에서 단 3군대에서만 상영하는 영화도 있어서
지방민들은 영화를 보러 서울이나 부산까지 가야 한다고...
그들의 취미는 영화감상이 아니라 영화오염이라고...
메르는 외국에 나갔을 때 모국의 극장문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 할 거라는 것을 참고 들어야 했던 하루.
희안하게도, 오늘 메르는 극장 안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원주에서 학교 선생을 하는 여자인데, <거북이도 난다>가 강원도 전지역 어디에서도
상영하지 않아서 서울까지 와야만 했는데,
그나마 나다에서는 하루 한 번 상영, 씨네코아에서는 하루 세 번 상영,
그러니 반 우연으로 이 여자는 메르를 만난 것이다.
잠깐 아는 척을 하고
객석은 텅 비었지만 서로 모르는 척 하고 따로 앉아서
각자 보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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