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재밌는 생각도 안나고 쓸 말도 없을 땐
[ A ]와 같은 생각들을 한다.
주변에 감지되는 말이나 사물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다.
[A]=[말은 발성하는 것이고, 쓰여진 것은 글인데,
말을 글로 쓰면 말일까 글일까. ]
이것저것 뒤적뒤적 기웃기웃하면서,
요건 왜 이렇고 저건 왜 저럴까 요리조리 훑어보고는 한다.
그래도 영 재밌는 걸 못 찾겠으면
가장 많이 하고 가장 오래된 글의 형태로서
그냥 어제 있었던 일이나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다.
영어로는 diary라고 하던가.
diary
어제는 지하철에서
한 여자랑 대화를 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내가 아무리 웃기려고 해도 잘 웃지를 않았다.
그녀가 웃지 않았다기 보다는 내가 웃기지를 못했는데
사람이란, 표정 하나만으로도 웃길 수 있는 반면
초 필살의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 웃기기도 한다.
내 생각에 그건 웃음 에너지의 전달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아무리 재밌는 얘기를 알고 있더라도
말하는 사람이 웃기려는 의욕과 에너지가 없다면 웃기기가 힘들다.
어제의 내가 바로 그런 상태여서
웃기고는 싶은데 속에 뭔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시멘트가 발라져있는 것 같았다.
11일 동안 환자와 시체와 축 늘어진 보호자들 말고는 본것이 없으니.
그래서 얘기 하다가 말고 멍- 하니까
왜 그러냐고 묻는다.
"마치 자궁이 없어진 느낌이야."
라고 말했더니
"남자도 자궁이 있어?" 하고 묻는다.
그 후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덥다는 말을 세 번쯤 했고,
묵주 반지를 나에게 자랑 하길래
"금이냐?" 물었더니
"응. 24K" 그런다.
"나 여행 갈 때 빌려줘."
"왜?"
"금은 휴대도 가볍고 어느 나라 가도 돈이 되잖아."
"생각해 보고"
그녀의 집은 일산인데
"일산에 호수 있다면서?"
"응. 유명해. 호수공원."
"거기에 코끼리도 있어?"
"뭐야~ 코끼리가 왜 있어."
"코끼리 본 지가 10년이 넘었네."
"난 얼마 전에 봤는데."
대화의 소주제별로 단락을 나누어 보면
단락 마다 전개되다 튀어야 하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강세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주먹을 휘둘러야 하는데
배에 떡이 차있는 것 같은 상황.
사람이 가득 찬 채로도 아무 사건 없이 공허하게
기차는 둥둥거리면서 가다가
나는 동대문에서 그녀는 종로 3가에서 내렸다.
나는 병원으로 가면서
아동병원에는 코끼리가 있을까, 생각했고
그녀는 요가하러 가는 중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