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Auster, MOON PALACE(달의궁전), 열린책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에 비한다면 음식도 더 나빠졌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더 옹색했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사소한 문제였다. 외삼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인 척하지 않았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너무 많은 책을 읽은 젊은이의 모든 열정과 이상으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내 행동은 여하한 행동도 취하지 않으려는 투쟁적인 거부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것은 심미적인 목적으로까지 고양된 허무주의였다. 나는 내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 셈이었다. 절묘한 패러독스로 나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내가 들이쉬는 모든 숨결로 나 자신의 운명을 음미하는 법을 배울 셈이었다.
정확히 시간을 재서 2분 30초 동안 반숙한 달걀 두 개, 빵 두 쪽, 커피 세 잔, 그리고 내가 마실 수 있는 만큼의 많은 물. 그것이 내 하루 분의 시사였다. 그 계획은 용기를 얻을 만한 것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어느 정도의 기하학적인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육체로부터 나 자신을 분리시키려고 애쓰면서 마치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함으로써 궁지를 에돌아 먼 길을 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보다 앞서 그 길을 갔고, 그들 모두 내가 마침내 스스로 알아낸 것, 즉 정신이 너무 많은 일을 하도록 요구받으면 정신 그 자체도 곧 물질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신이 물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가지 뜻밖의 사고로 결정됩니다”
내가 되도록이면 간명하게 설명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충격과 사고에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저는 2년 전에 철학적인 이유에서 그런 투쟁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건 저 자신을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선생님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요. 이 세상의 혼돈에 저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세상이 제게 어떤 비밀스러운 조화, 제가 저 자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어떤 형태나 패턴을 드러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주의 흐름에 실려 떠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 일을 썩 잘 해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저는 비참하게 실패했지요. 하지만 실패를 했다고 해서 그 진지한 시도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아니, 키티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어. 그 여자는 충동을 따르긴 하지만 그 충동은 지식의 한 형태이기도 해.
빅터 삼촌이 오래 전에 얘기했듯이, 대화는 누군가와 함께 공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이나 같다. 쓸 만한 상대방은 공이 글러브 안으로 곧장 들어오도록 던짐으로써 여간해서는 놓치지 않게 하고 그가 받는 쪽일 때에는 자기에게로 던져진 모든 공을, 아무리 서툴게 잘못 던져진 것일지라도, 능숙하게 다 잡아낸다.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그 대가리에 박힌 눈을 쓰란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데, 자네는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 <아주 평범한 맨홀 뚜껑>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어떤 두 가지 물건도 똑같지는 않아. 멍청이 같으니라고, 어떤 바보라도 그건 알아. 나는 지금 우리가 뭘 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거야, 빌어먹을!
“블레이크록.”
Ralph Albert Blakelock(1847~1919). 미국의 화가. 달빛을 소재로 낭만적이고 신비한 그림을 그렸다.
테슬라의 눈이 나를 꿰뚫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의 맛을 보았어. 그게 내가 말하려는 뜻에 더 가까워. 나는 입 안에서 죽음을 피치 못할 운명의 맛을 느꼈고, 그 순간 내가 언제까지고 살지는 못하리라는 걸 알아차렸지. 그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마침내 그걸 알고 나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이 바뀌고 절대로 예전과 같아질 수가 없어. 그때 나는 열일곱 살이었는데 별안간에,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내 삶이 나 자신의 것이라는 것,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만 속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 나는 지금 자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야, 포그
그때쯤 에핑은 자신의 고독 속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이제는 어떤 기분 전환도 필요하지 않았다. 전에는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조금씩조금씩 그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비 냄새가 나. 빗소리가 들려. 아니 비의 맛까지도 느껴져. 그런데 우리는 하나도 젖지 않았어. 그게 바로 물질에 우선하는 정신이야, 포그. 우리는 마침내 그 일을 해냈어.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깨뜨렸어.
나는 비에 흠뻑 젖어서 내 부츠는 물을 뿜어내는 웅덩이였고 내 몸은 사람 크기의 눈물이 되어 사방으로 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아무리 봐도 자네가 도서고나 직원이 도리 것 같지는 않은데, 포그.”
“저도 그게 이상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거기에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들은 결국 현실 세계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거기는 뚝 떨어진 곳, 순수한 생각의 지성소(至聖所)지요. 그런 식으로 저는 남은 살을 계속 달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에핑의 시신은 그가 남긴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다. 장례식이나 매장을 하지 말 것과 특히 자기의 유해를 처리하는 데 종교계의 어떤 인사도 참석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그날 나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온종일을 걸었다. 그렇게 걸음으로써 내가 밟는 땅에 벌을 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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