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0일 동아리 문집용 원고
1 우주에서 날아온 초대장 시간이 나면 별을 본다 서울대학병원 찾아 간다 그 길은 꽃과 과일 그리고 바구니의 길 손마디 엮어 물 한 모금 떠마신다 생명이 타들어가는 병원 응급실 때로는 어쩔 줄 모르는 환자의 아픔이 폭죽처럼 튀고, 뒤쫓아 들어오는 가족들의 아우성이 유성이 된다 여름이면 식중독에 걸린 별빛들이 토사물 범벅으로 실려 들어오고 겨울이면 늙어 쓰러진 별들과 술과 까스에 중독 된 자손들이 침착하게 간호사의 팔을 붙든다 불 꺼진 밤에야 겨우 보이는 나의 통증 죽어가는 별들의 손금 같은 불씨 그리고 오래된 대나무창 타는 냄새 아득한 저번 生 싸움 멈추고 남한산성 식어갈 때 처음 만났던 나의 어머니 도자기 같은 머리로 복도에 기대서서 그때처럼 손 흔드는 나만의 별 어머니 이 땅에 오시기 전 그곳은 꿈 많던 우주였으니 가슴 속에 반짝이는 암세포들은 어서오시라 독촉하는 우주에서 날아온 초대장 2 현금지급기 배를 불뚝 내민 현금지급기 멀뚱한 표정으로 바깥 비 오는 거리를 쳐다보고 있다 빗소리에 묻혀 몸뚱아리는 조용한데 깜빡 깜빡 또 깜빡 폐기된 형제라도 생각하는지 쓸쓸한 마음에 박자라도 맞추는 건지 돈 없는 지갑일수록 한없이 묵직하여 지급기 옆에 앉아서 깜빡 깜빡 또 깜빡 이민 간 형님도 생각해보고 헤어진 연인도 어루만져보고 오늘은 비 오는 수요일 피를 놓으면 줄줄 흐를 것 같고 깨끗한 개울가 바위 되고 싶어서 송사리 같은 피들 뽑아 병원 보냈다 사랑도 그리움도 어수선함도 다 빠져버리고 허전한 바위 되었는데 손님 오지 않는 현금지급기 깜빡거리며 반딧불이만 날았다 내 피는 사람의 마른 계곡 찾아들어 푸른 이끼, 배부른 바람 만들 것인데 배 나온 현금 지급기 네가 뽑아보낸 지폐들은 다들 건강하니 3 환승(換乘) 이번 역은 어머니와 자식사이의 거리가 넓사오니 발이 빠지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안 천장에 새가 날아다닌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면 역으로 나갔다가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는 무릎이 부드러웠을 때 어머니와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사람이 통조림을 흉내 낼 때 생겨나는 피로를 나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찌그러질 듯이 내 손을 잡고 역과 전철 사이를 건너고는 하였다 어른들은 술에 취해 걸어도 발이 빠질 염려는 없다고 말하였으나 나는 두려웠다 은하철도 999가 어느 별인가 멈출 때마다 철이의 발이 빠질까봐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잘라 우산을 만들면 발자국 프린트가 선명할 것이다 지하철이 굉음과 함께 떠나고 나면 남겨진 철로 위에는 떨어진 사랑이 수두룩하다 누군가 기다리는 곳까지 건너지 못하고 발이 빠져버린 사랑, 사랑, 사랑들 그 중에는 내 것도 몇 개 부러져 버렸으리라 어머니, 그리고 세상이여 이번 역은 우리 사이가 지나치게 멀었으나 내가 탄 이것이 순환노선이라는 것을 안다 어깨를 털고 고개를 바짝 세우며 다시 한 번 어머니에게로 換乘을 시도해본다 4. 달이 뜨는 복사기 복사를 해야지 오늘도 쿠르릉 스위치를 넣고 밥 먹어라! 종이를 찾았지 분홍에 흰빛 누렁에 흰빛 푸르스름 어둔 빛 서류며 신문을 모아 스르럭 두럭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눈 먼 달이 구른다 컬러복사 좋아요 축소복사 좋아요 확대, B4, 오케이! 빠르기도 문제 없어요 요즘은 달도 빠르죠 차기도 전에 애 낳죠 복사지를 가만히 쥐고 암스트롱 화성탐사 물고기자리 새벽금성 서쪽목성 쏟아질라 스테이플러를 집는다 열 달 꽉 못 채워 태어난 눈먼물고기자리 누런색에 어둔 빛, 내게도 꿈이 있었지 치워라 지워라 부시럭거리는 동안 어머니 가슴에 달뜬다 암세포 떴다 5. 앤 그대를 생각하는 것은 하루에 두 번이나 신발 끈이 풀어졌다고 하루에 두 번이나 책과 가방을 내 품에 건네던 그 장소에 다녀오고 싶은 때문이다 연근 같은 무릎을 구부리고 다정하거나 따듯하게 신발을 털고 끈을 묶는다 그대 정수리까지 별이 뜬다 이스라엘 소년병사처럼 까만 밤눈을 뜨고 낯 모를 무리를 경계한다 실상은 더 아름답고 길버트*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소년은 결코 총을 쏘지 못한다 금속 방아쇠 안에 혈관이 돋아 어지러운데 나는 누구도 쏘지 못하고 차가운 사막, 모래 언덕 위에서 머리에 헝겊을 덮어쓰고 두리번거린다 빨간 그대 가방을 찾는 더 빨간 여우가 되어 겔겔 돌아다니는 사람 신발 끈의 잔상으로 목이 졸리고 신경질을 내다 잠이 깨는 사람 앤 - 이라 부르다가 어색해서 딸꾹질이 시작되어버린 사람 대추나무에도 앤이 있고 마당 수돗가에도 있고 만두가게 모둠 3번에도 앤은 있다 가슴 막혀 두드리다 두드리다 보면 녹슬어가는 4.5미리 愛탄환 꿈 속에서 이불장, 옷장 한없이 넘어가던 날 * 빨간 머리 앤이 좋아했던 남자 아이. 6. 옆방으로부터의 소리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맥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 2천원이 되지 않는구나 하며 좋아라 하였습니다만은 옷을 갈아입는데 복도에서 신음소리 들려옵니다 아, 아, 아, 아,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문을 꼭 닫아걸었습니다만 마음의 창은 열려있습니다 담배 한 가치로 문을 열고 나가 옆방으로부터의 소리를 듣습니다 아, 아, 옵빠, 옵빠, 나 무서워, 아옵, 내 속이 타들어갑니다 어지럽습니다 오늘따라 달은 혹성처럼 보였습니다 달과 여자는 흐느낀다고 하는데요 그 한편에서 찰박거리는 나는 물가를 빼앗긴 해변의 모습입니다 물소리 들리고 남, 녀는 샤워를 하는데요 그 소리는 그 소리는 그 소리는 발자국 마저 빼앗겨 버린 내 사랑을 불 날새라 비벼 끄는 소리입니다 7. 전화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둘째야 이제 돌아오라고 머리가 아파 가지 못했네 인생이란 거의 껍질과 같아서 벗겨지기 위해 존재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미끄러운 거리에 서서 얼음의 별, 플루토 보고 말을 하였네 머리 아파 가지 못했더라고, 정말이라고 어머니 웃었지 400억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도 어머니 웃음 다가왔네 가슴 속에서 미역- 미역- 이런 소리가 났네 어머니께서 말씀 하셨네 가끔 꿈에서나 볼 수 있다고 너 자취집 앞마당에 반짝 풀을 뜯어 전화하라고 나는 더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았네 땜질 투성이 가슴이 아팠네 8. 오늘도 사랑하네 어제도 뽀르노를 보았는데 오늘도 그 여자를 보았네 어제도 울었는데 오늘도 울고 말았네 오늘은 다른 부분에서 마음이 아팠네 그녀는 어색하게 카메라를 보았네 그녀가 찢어질 것 같았고 나는 나를 찢고 화를 내고 말았네 그러나 외국 것, 외국 사람들이라 도통 욕이 서질 않았네 그러나 울음만은 똑같았네 나에겐 빈 병이 있고, 빈 병은 나를 키우네 가만히 울며, 먹고 먹고 하도 먹어서 붉게 이끼 낀 물고기가 되었네 내 몸을 잡고 흔들면 쨍그렁 잡다한 것들이 소리를 내내 뽀르노를 보고 시를 쓴다니 창피한 일이라 비밀 번호를 12자리나 누르고 인터넷 안에서 울고 있다네 아무도 모르겠지 아무도 모르겠지 나도 모르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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