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밤새도록 울었다.
울었을 것이다 왜 어째서 어떤 식으로 울었는지를 얘기해 줄 순 없다.
그건 나 또한 나에게서 들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진실을 얻어 듣기란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내가 나에게 모질게 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나는 살짝 미치지 않았는가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 중 하루가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미쳤다는 것, 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것이 뭔지.
그러나 미쳐간다는 것은 그보다는 쉽다.
미쳐간다는 것은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데,
라고 생각하는 것을 뚫고 생각이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미치는 갈래를 모두 내가 아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갈래는 과대망상이거나 피해망상이거나 편집증이 아닐까 싶다.
이 생각들은 꿈속에서 이루어졌다.
내 울음도 꿈 꾸는 동안 이루어졌다.
밤새 꿈을 꾸었고 울면서 몸을 떨었다.
심장 판막이 하얗게 탁색된 듯한 느낌이 든다.
왜 울때 심장 판막 따위가 헉헉거리고는 하는 것일까.
어느 순간 어떻게 살아야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들은,
내 나이가 얼만데 이룬 것이라고는, 하는 식으로 변질되어진다.
변질 되어진 이후에는 돌이킬 수가 없다.
한 번 김치가 되어버리면 다시 배추가 되긴 틀린 것이다.
사람이 익는다는 것을 철이 든다고 표현해 왔다면,
틀림없이 철이 든다고 하는 말은 훌륭한 표현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목격했다 철이 든다고 하는 상황들은.
머리를 얌전히 가지런히 한다거나.
노는 것을 멈추고 월급쟁이 생활에 순응하거나.
돈이 좀 생기면 집에 뭔가를 사들고 가는 정도의 상황이다.
사람이 익는다는 건 쉽게 보자면 그런 정도인지 모르지만,
다른 말로는, 남들 하는 데로, 남들이 하라는 데로,
가 되어 버린다.
나는 왜 울었을까 약간의 인정머리로 내가 나에게 남겨놓은,
힌트라고는 어머니를 만났다는 것.
생선 시장, 왜 다들 수원으로 가버리는가.
감내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조율과 조정, 타이밍, 경계를 만들되 티를 내선 안 된다는 것.
지난 뒤에야 선이 보인다는 것.
선이라는 것이 보여질 수 없는 것임에도 보인다는 것.
어제의 울음은 소리조차 없어 나를 속였다.
약간의 힌트와 격해진 심장, 판막의 씩씩거림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점점 교묘해지는 나는 나에게 주는 정보들을 컨트롤한다.
나이가 들수록 주는 양이나 범위나 분야가 협소해진다.
다분히 생계와 명예, 품위, 인간관계 쪽에 그 에너지가 높은 정보를 배출한다.
조정된다.
내가 나를 탓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타협한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내게 숨기는 것이거나,
뭐,
알 수가 있나.
나는 흥분하지 않는다.
나는 흥분한다.
나는 울지 않는다.
나는 운다.
해가 뜬다, 새 하루
지구가 가라앉는다, 새 하루
교묘한 관계에 한 순간 당황한다.
이런 식으로 당황하는 순간들이, 일들이 급감하고 있다.
망설이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그런 걸 나는 내게 강요하고,
나는 울며 승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