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맛
잠을 자고 나니
발목이 삐어있었다
잠을 자는 동안 어디를 다녀온 것일까
녹차를 하늘에 매단 적이 있다
내려놓는다는 것을
사랑처럼 쉽게 잊어버렸다
그것을 찾아 다녀왔으리라
지도가 있어도 길을 찾아가지 못하는 현실과 달리
꿈을 꾸는 동안에는 어떤 길도 분명하다
이 흐리멍텅한 현실을,
나는 꿈속에서 어떻게 했을까
녹차는 어떤 꼴을 하고 있었을까
사랑 같은 건 두고 다니는 법이 아니다
잊지 않을 것 같지만 꼭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항상 따라놓은 녹차 한 잔을 잊어버린다
잔이 식는 줄 까맣게 몰랐다가
벌써 식었다고
혀를 낼름거린다
잠을 자고 나니
발목이 삐어있었다
지하철은 욱씬거리며 부어 올랐다
사람들 볼따구니 마다 까맣게 식어버린 녹차 찌꺼기들이 보인다
깨끗한 것은 닦지 않아도 깨끗할까
혹은, 더욱 깨끗이 닦아 두어야 할까
발목을 좀 더 단련해 두었더라면
빙글빙글 어지럼증만을 돋구는 의자를 벗어나
텃밭의 토끼 시늉이라도 익혀두었더라면
꿈속의 이름 모를 국도들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수의 방아쇠처럼 아침을 당기는 알림 시계만 아니었더라면
꿈속에 굴을 파고 잠시 쉬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하철은 발목이 부러질 듯 급정거하여
서울역에 나를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것이 감사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울었을 지도 모른다
손바닥에서 운 냄새가 난다
그리운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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