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결국 남는 것은 껍데기다
녹차병, 껌종이, 빈지갑...
이런 것들에게
어젯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얘기한다
거울을 보며 춘 춤이나
내 똥구녕 속을 달려가는 달빛이나
땅을 접어 걷는다는 여자애 이야기
나는
내게 설명하지 않아 다행이다
어제가 몇 번쯤 반복되어 지나간다
녹차병 속의 어제
껌종이 틈의 어제
지갑 속 꽉 꽉 배고픈 어제
기억도 반복되니 껍데기가 되어
소파에 나란히 앉는다
껍데기만 남으니 말이 통한다
데기데기 데기데기 껍
그런 방면으로
시가 향한다
<껍>이 울자 <데기>가 그리 뛰어간다
이렇듯 잘 통한다
그리하여 속이 없는
녹차, 껌, 지갑, 기억과 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너의 껍데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