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얼굴>, 자크 오몽, 2006, 마음산책
영혼은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얼굴은 ‘시선의 장소’다.
배우는(…) 결코 분장에 자기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뒤돌아선 얼굴을 얼굴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각자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얼굴을 바라보면 그 얼굴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
최근, 사진 작가 프랑수아 술라즈Francois Soulages는 ‘위대한 사진’은 “얼굴을 포착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얼굴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는 사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가 그리는 사람 혹은 사물에 대해 무엇보다 먼저 이해하고 표현해야하는 것은 바로 정신이다. – 외젠 들라크루아, 1850년 9월
우리를 감동시키는 사진의 매력은 (…) 무엇보다도 사진의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관람객은 일단 그 진정성의 권위를 받아들이며,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거기에 있었더라면 그 장면이나 오브제를 정확히 똑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필연적으로 믿게 된다.
- 에드워드 웨스턴, 1945
사진의 노에마noeme는 ‘그것이 있었다’ 이다.
(‘노에마’는 현상학 용어로, 의식의 대상적 측면을 가리킨다.)
절대적 유사성이란 우리가 어떤 초상화 앞에 서 있을 때 영문도 모르는 채 사로잡히고 설득당하게 되는 감정 상태를 말한다.
거듭 말하지만, 모델에게 적합한 포즈를 취하게 하고 조명을 조정하고 배치하는 것은 사진 작가다. 바로 이 점에서, 사진 작가는 그의 예술적 감각을 실제로 발휘하게 되고 인격 또한 드러내게 된다.
- 알렉상드르 켄, 1864
연극 무대에서, 배우는 특정한 말들을 특정한 방향을 따라 중얼거려야 한다. 그러나 그가 진짜로 중얼거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배우는 객석 맨 뒷줄에 앉은 관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맨 뒷줄의 고객도 비록 싼 입장료이긴 하지만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내고 입장했으므로, 당연히 그에게까지 말을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연극 배우는 ‘속삭임’에 관한 연극적 관례를 따르는 어떤 어조로 말하게 될 것이다. 반면, 영화배우는 자신의 대사를 실제로 중얼거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영화의 불특정 관객은 연극으로 말하자면 아래층 맨 앞자리 좌석에 전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 라이오넬 베리모어, 1939
‘촬영’이란 무엇인가? 이 단어는 본래 ‘포획’을 암시한다. 즉 무엇인가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당연히 ‘자연스러움’과 리얼리티다.
배우는 오직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배경에서 연기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완벽한 자연스러움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진짜 나무다. 그것은 관객이 나무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진 소품이 아니다. 따라서 배우는 이 사실성과 경쟁해야만 하며, 자연스러움이라는 면에서 나무와 똑 같은 자유로움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 L. 베리모어
이분법이라는 단순한 도식이 갖는 위험성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얼굴의 두 가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다. 먼저, 사용가치는 얼굴을 하나의 예외적인 오브제로, 의도적으로 고정된 표현성을 위한 장소로 만들어낸다(사실, 움직이는 것은 얼굴이 아니다. 얼굴이란, 그것을 둘러싼 세계-디제시스적 세계-로부터 퍼져나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새기기 위해 마련된 하나의 표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교환가치는 얼굴을 의미, 이야기, 움직이의 순수한 수행자로 만들며, 나아가 ‘서사성의 요충지’, ‘디제시스의 연결 고리’로 만든다.
배우는 (…) 결국 보편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 니콜 브르네
더빙의 기교는 바로 ‘리핑lipping’의 기술이다. 이때 입술의 움직임과 발성은 가능한 한 완벽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목소리가 우선이 아니라 ‘말’이 우선임을 의미한다. 즉 관객은 얼굴과 목소리 사이의 불일치는 그런대로 참을 수 있지만 입술 움직임과 말의 불일치에는 몹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입이 말한다”는 것의 의미는, 관객 입장에서 입이 가시적으로 말하기를 원하며 귀가 듣는 것을 눈이 확인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본래, ‘리핑’이란 목관악기를 연주할 때 입술, 얼굴 근육, 턱 사이의 일치를 가리킨다.)
‘해독하지 않고 바라만 보는’ 행위는 의미 작용의 부재로 향하는 퇴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사물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가는 일종의 전진이었다. 그것은 또한 주체나 의식 같은 성가신 개념들을 격리시킬 수 있는 행위로도 받아들여졌다.
가시적인 것은 자명하다. 그것은 존재하기 위해서나 인정받기 위해서 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그 얼굴이 다른 얼굴보다 더 진실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얼굴이 ‘진실과의 관계’를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원인의 매개념(媒槪念)moyen이자 진실의 매개념이다.
배타적 시각의 이상적인 예로 한 가지 관찰 대상을 든다면, 바로 아이들과 동물들이다. 모든 독일 작가들은 이 둘을 하나의 완벽한 패러다임으로 결합시켰다. 아이들과 동물들은 이상적인 클로즈업들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은 항상 같은 뜻을 가지고 있고(슈틴트stindt), 그들에게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에 아무것도 첨가하기를 원하지 않은 채 항상 그들의 한계 내부에서 놀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非)정신적인 전형들이며”(함스Harms), 오직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부류에 속한다. 또한 “사유를 모르고 단지 ‘갖기’와 ‘살기’만을 할 줄 아는 단순한 천진함에 따라” 행동한다. 발라즈의 경우도, “아이들과 동물들의 특별한 매력은 인간에게 전혀 영향받지 않은 가장 근원적인 본성 중 하나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고 언급한다.
인간의 얼굴에 내재된 통일성은 역동적이다. 왜냐하면 얼굴은 영속적인-혹은 적어도 잠재적인- 움직임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지 상태에서조차도 얼굴의 좌우면들은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며 ‘같으면서도 다른’ 유사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조각과는 달리) 얼굴의 좌우면을 상이한 방식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회화적 재현은 여전히 이러한 모순적 유사성을 더욱 강조한다. 얼굴의 표현은 그러므로 자세를 바꾸기 위한 이동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전체’며 ‘유동성’ 자체다.
… 어떤 리얼리즘도 실재와 실재의 시적 이미지를 혼동하고픈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 영화에는 음울하고 모호한 ‘시적’ 리얼리즘이 있었다.
우리가 (배우에게) 주문하는 것은 연기하지 말고, 살아내라는 것이다. 카메라는 일종의 냉혹한 굴착기다. 그것은 찡그린 얼굴 위에서도 멈추지 않고, 가면들을 깨뜨리며, 인간을 찾아 좀더 깊숙이 파내려간다. (…) 배우의 재능이란 바로 그의 인간적 실체가 지니는 자질이다.
- R. 바르자벨, 1944
델라: 여자들은 사랑에 빠져 있어요. 남자들은 고독하고요.
의사: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항상 함께 어울리는 걸까?
사장: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에게서 고독과 사랑을 훔치거든.
델라: 그 사실을 얼굴에서 알 수 있어요.
의사: 얼굴에서, 얼굴에서! 얼굴은 얼간이들을 위해 만들어졌군!
이미 잃어버린 것만을 잃을 수 있다
시간의 죽음, 죽음의 죽음
죽음은 인간에게 속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은 나에게 속하는 유일한 것인데, 그 이유는 내가 내 안에서 육체, 정신, 심리, 영혼의 지극히 경미한 움직임들을 통해 끊임없이 죽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죽음은 삶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미봉책들 혹은 우회적 방법들을 동원해서 나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낭만주의자는(20세기 초까지 많은 낭만주의자들이 있었다) 세계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세계와 함께 날마다 조금씩 죽어갔다. 낭만주의자는 세계가 자신의 내적 세계와 지나치게 달라질 경우, 진심으로 죽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리듬은 물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죽음이 가장 많이 변하고 최대로 빠져나가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상상을 통해서다. 여기서 다시 얼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얼굴의 가능성은 곧 얼굴 자체의 죽음을 인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얼굴은 자신이 인간임을 알고 있는 어느 주체의 외양인데, 모든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얼굴은 자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느 주체의 외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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