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구석에 쳐
박혀있던 휴대용 카세트를 발견했다. 테이프들과 함께 버리려다가
문득, 테이프로 음악이 듣고 싶어서 회사에 가져와서 듣는다.
이 잡음을, 어머니에게 선물했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듣던 라디오가 고장이 난 김에
가지고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카세트플레이어를 하나 사달라고 하셔서
테크노마트에서 하나 사다 드린 것이다.
나는 의외로 까다로운 구석이 많아서
내가 들을 카세트플레이어를 사려고 했다면 두 시간은 걸렸을 테지만
어머니가 들을 거라 생각하니 채 6분도 걸리지 않았다.
싸고 튼튼하고 가벼운 카세트플레이어 주세요.
중소기업 것도 괜찮나요?
예, 상관 없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워크맨을 갖게 된 이후로
몇 개의 카세트플레이어와 몇 개의 CD플레이어와 몇 개의 MP3를 사용 하는 동안
한 번도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해 본적 없는 주제에
귀를 닦는답시고
정품 CD와 복사판 CD의 똑같은 곡을 눈감고 구별하는 연습이나
테이프 음악과 CD음악을 구별하는 연습을 하고
카페의 스피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카페 후지다고 돌아나가던
그랬던 나는 단단히,
어머니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는가 보다.
어머니는 거의 까탈스러운 면이 없던 분이어서
(아니, 없다기 보다는 내가 어머니의 성격을 잘 모르는 것이지만)
이 Phoenix 의 값은 싸지만 음질은 형편 없는 카세트플레이어에
독경 테이프를 꽂아 종종 들으셨다.
(잘 모르겠다, 들으셨을 거다)
이걸, 그러고 보면 나름
유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머니가 쓰던 가위, 어머니가 쓰던 칼, 같은 것들은 아버지에게 넘겨 주었고
내가 방을 구해 집을 나갈 걸 상상하며 짐을 꾸려보니
내 짐 속에 어머니가 쓰던 물건은 이것 하나뿐이로군.
선물을 할 때는,
특히 그 선물을 받을 사람이 암 같은 큰 병에 걸렸을 때는
좀 좋은 선물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어머니의 유품이랍시고 이 카세트플레이어에
고등학교 때 듣던 쵸핑의 녹턴 테이프를 꽂아서 거의 12년 만에
플레이 버튼을 딸칵, 눌러보니
지독한 잡음이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귀 버릴까봐 거저 줘도 듣지 않던 테이프를
다시 듣는다.
왠지 봄이 오는 것 같다.
어머니가 잘 썩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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