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풍경 너머 풍경
이병률
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가 황혼에 눈길을 주다보면 저 멀리 풍경이 강가에 다리 놓는 모습 보입니다
강 저편에서 강 이편으로, 강 이편에서 강 저편으로 서로 각자의 기둥을 놓고 손을 내뻗는 모습에 무작정 속이 아리다가도 그 속도가 아름답기도 하고 장해 보이기도 하여 창자가 다 휘둘립니다
며칠에 한번쯤 통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神)은 자꾸 자리를 만들고 허문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당신들도 지워졌으므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들의 장엄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당신도 목숨 걸고 자본주의의 풍경이 되는 일을 합니까
한 풍경이 등짐을 지고 일 갔다 돌아옵니다
자꾸 먼 데를 보는 습관이 낸 길 위로 사무치게 사무치게 저녁은 옵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이 시를 읽다가 어느 한 구절에서, 징징거리고 떼 쓰고 싶어졌다. 사실은 그냥 울음이 나올 것 같았던 거지만.
오늘은 퀴즈를 하나 내려고 한다.
내가 이 시를 읽다가 울음이 나올 것 같았던 한 줄의 문장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맞춰주시는 분에게는 이번호에 제가 받는 원고료를 계좌이체 해 드리겠습니다.
이 아래의 내용들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세요.
* 한국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재 중 하나가 풍경인 것 같다. 산이나 꽃, 바다, 이런 것들은 다 풍경인 것 같다. 풍경의 특징은 스토리나 시간의 흐름을 쉽게 느끼기 힘들고, 반전도 별로 없으며, 기껏 반전이라는 건 화자의 어떤 깨달음인데, 그 깨달음들이 여러 개의 시에서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요즘의 젊은 도시인들에게 풍경 시들은 지루하고 먼 얘기이다.
* 가끔 가슴에 와 닿는 풍경 모습은, 지극히 도시적인 풍경일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났으니까.
* 예를 들어 서울에서 태어나 강남, 압구정, 명동, 신촌 등을 돌아다니며 자란 청소년이 있다고 하면, 그 청소년에게 지방대학생활은 유배처럼 느껴질 지도 모른다. 내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닌데… 하며 학교를 4년간 고개 숙이며 다닐지도.
* 그러나 간혹,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났지만,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평화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이런 사람에게는 ‘나는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일 죽으면 나는 대체 뭐였던 거지?’라는 특유의 의문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그저 높은 학점과 취직을 위해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을 내심 비웃기도 한다.
* 비자본주의 지역에서는 ‘공부를 위한 공부’라는, 남한 사람들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 가능하다.(박노자,당신들의 대한민국 中)
* 나는 한국에서도 ‘공부를 위한 공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게 그냥 꿈이었는지도.
*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이 되려는 사람들이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는 학교에 자식을 보내야 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다분히 자본주의적 풍경인 것 같다.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고 싶어했던 젊음을 경험한 선생님들이 가르칠 것이야 뻔히 ‘안정’이지 않겠는가.
* 풍경이 주는 감동은, 말로 떠벌리지 않고 그저 모습으로 진실을 얘기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당신의 모습은(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눈물 날 정도로 사회귀속적이 아닐까.
(정답 보내실 곳: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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