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김기덕 감독은 남산 옛 교도소에서 12번째 영화 <숨>을 찍었다는데
나는 카페 <숨>에서 3번째 방문 도장을 찍는다
김기덕 감독은 총 12회 촬영으로 영화를 쫑! 낸다는데
나는 차 한 잔 보너스로 마시기 위해 채워야 하는 쿠폰의 빈 칸에
3번째 도장을 겨우 채웠을 뿐이다
차는, 따라내기 위해 끓는다
그렇다면 따라낸 것은 이제 식을 수밖에
햇빛도 점차 차가워진다는 태양계 절대 온도를 지나 커피 배달하러 가는 꿈을 꾼다
나는 삼장법사 차림으로 커피를 타고 있다
얼굴을 박박 문지르면 마른 피부 껍질이 부적부적 떨어져 내리고
피부에 붙어있던 올리브잎 추출 성분과 비타민 E 첨가물과
최신 공법들의 잔해를 박테리아들이 주워먹고 산다
하늘에서, 하늘에서 먹을 것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햇빛 드는 창가에 안경을 벗어 놓는다
눈 대신 안경이라도 빼내 살균 소독하려는 것이다
아버지를 살리려다 아들이 죽는 꿈을 어젯밤 꾸었는데
아침에는 나와 차를 마시다 혼자 급히 응급실로 뛰어가던
이영애와 장나라를 닮은 여자애가 생각이 났다
차 속에 모밀 성분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메밀 알러지 성분이 첨가된 순수 미네랄 피부를 타고 났던 그녀
내 어머니도 병원에서 죽었으므로 나는 늘 병원이 고맙다
의사에게도 고맙다, 고맙다고 생각하니
안경을 벗어 접어도 다리 마디마디가 시원하고 세상이 맑다
어느 뱀은 가죽이 하얗고 어느 뱀은 가죽이 황토색이라는데
어느 뱀을 담가야 맛 좋은 뱀술이 될까를 고민하던
한 중년 남자의 일요일 오후, 상상은 즐겁다
들락날락, 들락날락 <숨> 속에서 슬픔이나 원통함 같은 것도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는 것이다
차란, 따라내기 위해 끓는다는데
숨도 오고 가기 위한 걸음걸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