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보다 긴 하루, 친기즈 아이뜨마또프, 열린책들, 2006
나중에 예지게이는 고요한 사로제끄를 마주 보고 설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사막의 광대함에 대항하여 자기 영혼의 강도를 진정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신이 정말로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다 제쳐 놓더라도, 인간은 대개 마음속으로 그렇게 믿고 싶을 때는 신을 기억한다.
매일 밤마다 나는 달을 보고 달은 나를 봐.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얘기를 알아듣지 못해. 저기 위에 누가 있는데……
멘 보따시 올겐 보즈 마야 뚜리빈 껠립 이스께겐(나는 새끼를 잃고 밀짚으로 채워진 새끼 낙타의 가죽 냄새라도 맡으러 찾아온 어미 낙타)……
그리고 한번은 그 낙타가 예지게이를 쓰러뜨려 짓밟았던 적이 있었는데 만일 예지게이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인간적이 아니라 논리적인 존재였다면 그는 부란니 까라나르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비차을 보라. 그는 어렸을 적부터 어디에서건, 기숙학교에서,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여러 과정의 공부를 거치면서 항상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까잔갑은 불쌍하게도 사비찬이 누구보다도 잘살게 하려고 벌거나 손에 넣은 것을 모조리 다 바쳤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었던가? 그는 뭐든 다 아는 척만 하는 쓸모없는 인간일 뿐이고 앞으로도 늘 그런 식일 것이었다.
「왜 그렇게 선로를 따라 걷는 거요? 어떻게 보면 꼭 당신이 지나가게 내버려 두도록 기차더러 선로를 벗어나라는 것 같습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언제나 슬기로워 보이고 그럴 법한 말을 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애들이 자라나면 우리 세대의 선생님들이 아는 게 그리 많지 않았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슬기롭지도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쩌면 그 선생님들의 생각을 완전히 시대착오적이라고 비웃게 될지도 모르지요. 시간의 수레바퀴는 점점 더 빨리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전설 속에서 그렇게 하려고 했지요. 그들은 후손들에게 자기네들이 한때는 위대했다는 걸 밝히고 싶었던 겁니다.」
「옛말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힘만 있으면 제 아비도 몰라본다고요. 이제 그놈 때가 온 겁니다.」
「펜으로 쓰인 건 도끼로도 잘라낼 수 없어」
「애들한테 바다 얘기를 해주세요!」 아부딸리쁘가 속삭였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상층 기류에 씻기며 지구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공전을 계속했다.
때때로 그는 자기가 하루 종일 아내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다와 태양의 힘을 그 자신의 몸속으로 끌어 모아 비축했다가 그 힘을 모두 그녀에게, 기다리는 아내에게 쏟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돔브라를 집어 들고 연주에 몰두하는 동안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기예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흔히 그렇듯, 나날의 일상사를 송두리째 잊은 것처럼 보였다.
「무슨 곡을 연주할지는 연주하시는 분 자신이 가장 잘 아니까요」
트럼펫 소리 같은 그 낙타의 울부짖음도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누가 어떤 사람을 이교도라고 고발하기만 하면 그 고발당한 사람은 부하라의 시장에서건 아니면 유럽에서건 돌에 맞아 죽거나 말뚝에 묶여 화형을 당하는 그런 식이지. 자네가 여기에 있을 때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네, 예지게이. 아부딸리쁘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실들이 밝혀진 뒤에 나는 사람들에게서 이 질병, 즉 어떤 사람의 개성에 대한 증오심이 없어지려면 아직도 오랜 시간이 더 지나야겠다는 점을 한 번 더 확인했네>
예지게이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관심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 아무 쓸데 없는 얘기들을 지껄여 대는 것일까? 어째서 그들은 보드까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일까?
그 마지막 생각이 그의 결심을 굳혀 주었다. <자, 간다! 개한테 주인이 있다면 늑대에게는 신이 있어!>
지은이의 말 중(中)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주된 목적은, 내가 알기로는, 노동자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환상의 의미에 관하여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절에 <예술에서의 환상에는 그한계와 법칙이 있다. 즉, 환상은 독자들이 그것을 거의 사실로 믿을 수 있을 만큼 현실에 끼어들어야 한다>고 적었다.
은유는 특히 현대에 와서 중요해졌는데, 그것은 예전 같으면 공상이었던 분야에서의 과학적·기술적 진보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무상한 세계가 경제적·정치적·이념적·인종적 차이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도 더욱 그러하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0) | 2007.05.04 |
---|---|
인피니티, 인쇄, 2007 (0) | 2007.04.19 |
네스카페 카피, 좋은 아침입니다 (0) | 2007.04.11 |
시안, 2007년 봄 (0) | 2007.04.04 |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 - 타카미 요코 (0) | 2007.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