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다치바나 다카시, 청어람미디어, 2002
오늘날은 여러 지식 분야에서 더 이상 암기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을 정확하게 참조하여 이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지금 새삼스럽게 논의할 명제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역사를 되짚어볼 때 도쿄대학 학생들은 이미 바보였다(또는 바보로 육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바보’라는 표현은 기본적인 지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가 교육의 목적에 관해 설명한 대로,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라는 관점에서(그런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볼 때의 바보이다.
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교양론’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중장년층의 탄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과1 에서 법학부로 진학하여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공부는 나름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부는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수단이지, 공부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법학부 졸업생 중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겨우 4%에 불과하다.
일본의 엘리트는 관료든 민간인이든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생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대체적으로 교양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성 관료를 비롯하여 최근에 스캔들을 일으키고 있는 정부 고관들(특히 체포되지 않고 있는 못된 관료들) 대부분이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생이다. 중학생이 나쁜 사건을 저지르면 즉시 학교에 문제가 있다.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우리가, 어째서 대장성 스캔들에 대해서는 “도쿄대학 법학부는 대체 어떤 식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인가?”라고 비판하지 않는 것일까?
유럽의 대학은 국가에 대해 진리와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요구하며 몇 번이나 충동을 되풀이했고, 그런 역사를 대학 당국 자신이 긍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대학에는 그런 요소가 거의 없다.
이런 교육 방식이 외국인의 눈에는 특이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의 대학교육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일즈Walter C. Eells라는 인물은 일본의 교육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대학생은 교실 좌석에 배열되어 있는 ‘찻잔’ 같은 존재이다. 교사는 ‘주전자’를 이용하여 계속해서 지식을 ‘찻잔’에 따르는데, 그 찻잔의 용량 따위는 완전히 무시된다(일본의 대학교육개혁, 오카 마사오, 다마가와대학 출판부).”
요컨대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생은 양산되는 ‘찻잔’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자(즉 오성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자)는 ‘미천한 하급 관료’조차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술집에서의 음탕한 접대는 ‘미천한 하급 관료’에게 잘 어울리는 놀이다.
실학은 교양이 아니다. 실학은 독일어로 ‘빵을 위한 학문’인데, 교양은 빵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빵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지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갖추려 하는 지식이다. 그런 지식의 총체가 교양이다.
일본에서는 학문이 지나치게 실학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모르는 학문 영역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적시 ‘그걸 알아서 뭐하냐?’ 라는 식으로 반문하려 한다.
“우주과학 분야에서의 새로운 발견을 해서 기자회견을 하면 반드시 ‘그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의 발견이 실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학문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이다. 그래서 서유럽의 경우에 적어도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런 질문이 터져나오니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식 교양의 개념을 따른다면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물 속에 던져 넣고 잠시 동안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영은 익힐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여 일본에서는 노트와 키워드를 적은 카드를 한 손에 들고 방바닥 위에서 수영하는 방식을 가르쳐주면 저절로 수영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교양을 그렇게 간단히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폴 풀키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는 어느 누구도 만인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명백하고 확실한 내용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여기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내용을 아는가 하는 것보다는 지(知)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주제를 설정할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유를 활용하지 못하고 일반 시험에서 교수가 출제하는 것과 같은 주제를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한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시험처럼 교수가 강의에서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포기했다. 마치 형무소의 자물쇠를 벗기고 죄수들에게 ‘이제 자유로움 몸이니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말했는데도, 대부분의 죄수들이 감옥에 남기로 결정한 것과 같은 태도이다.
어떻게 보면 도쿄대학 학생들은 일본형 주입식 교육의 세계 속에서만 슈퍼 엘리트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운 것을 그대로 머리 속에 입력했다가 시험을 볼 때 그것을 출력하는 것은 잘 하지만, 자신의 머리로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학에 입학한 후 자신의 지적 발달이 빠른지 느린지, 시야가 넓은지 좁은지, 이해력이 깊은지 얕은지는 자신이 자신의 뇌에 무엇을 언제 어떻게 부여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탓할 문제는 전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뇌의 발달은 부모의 교육 방식이나 학교 선생님의 교육 방식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완전한 자기 책임이다.
미도리:
지금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입시를 거대한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지요. 따라서 필요한 과목만 집중하게 되고, 합격하기 위한 테크닉을 익히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해서 입학을 했는데, 학력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아요.
나카무라:
입학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버렸어요(웃음). 조사해보니 외교관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직업이더군요. 모든 문제를 정부의 지시대로 수행할 뿐이고, 책임을 지려고도 지우려고도 하지 않고요. 가장 중요한 독자적인 정보 수집은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문화 교류 따위도 완전히 경시되었어요. 그래서 외교관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접대’라고 하더군요. 외교관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봤지만, 대부분 그런 대답이 나왔기 때문에 깨끗하게 포기했어요.
히라오:
그뿐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에 무엇인가를 희생한 결과, 입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가련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지요(웃음). 그 점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에, 고마바에서 공부할 때는 서클에도 가입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마음껏 놀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평범한 대학생이 되려는 경향이 강하지요.
히라요:
모두 기본적으로는 성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쓸데없는 공부는 하지 않지요. 이 정의를 따른다면 막스 베버를 읽는 시간조차도 낭비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시험 범위 안에 포함된 내용이라거나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 읽겠지만요.
문부성은 항상 학력 저하 문제는 없다고 부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학원이 학력 저하 현상을 막고 있기 때문이야. 초·중학교에서부터 학원에 가서 학력 저하를 막으려는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서 국제 시험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지. 문부성이 자랑할 이야기는 전혀 아냐.
그러나 지금 대학의 경향은 교양교육은 무시하고 전문교육을 일찍 시작하자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 그런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에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전문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교양 수준이 상당히 저하된다는 데 있지. 학력 저하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냐. 좀더 일찍 전문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 과정 교수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바보로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지.
“산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과 교류를 가진다는 것, 이 세상과 맞선다는 것,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이 세상을 위해 종사하는 것이다.”
“모든 삶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계획하는 것이다”
더구나 특이한 사람일수록 특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국경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 작품들을 충분히 즐기려면,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는 경험을 쌓아 감성을 연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르테가는 과학 지식이 갈수록 단편화되면서 전체적인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교육 내용에 포함시키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수법의 철저한 합리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양 ‘학부’ 교수의 입장에서는 지식의 효과적인 종합화, 조직화, 체계화의 창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종래에 우발적으로만 표출되었던 일종의 과학적 재능, 즉 통합할 수 있는 재능(el talent integrador)이 요망된다.
한 가지 테마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여 한 학자의 단일한 분석을 통해서는 결코 살펴볼 수 없는 다면적인 실상을 보여주려는 시도 자체는 단편화 되어가는 지식 세계를 종합화시킨다는 시도로서 꽤 칭친할 만한 현상이다.
희망에 가득 차 대학에 입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잔뜩 실망하여 대학 따위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실망하는 사람과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이 지금 그곳에 존재하며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 의미를 발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박사 실업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박사 과정을 나왔지만 취직 자리가 없는 사람들. 저는 그들을 고등학교 교사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 일본의 교육은 놀라울 정도로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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